눈에는 눈, 책에는 책! 감상-소설

눈에는 눈, 책에는 책!
: <스타십 트루퍼스>에서 <노인의 전쟁> 시리즈까지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YES24.


 웹서핑을 하다 발견한 책인데, 제목만 보고 <반일 종족주의(2019)>를 반박하는 책인 줄 알았더니, 웬걸. 이영훈 박사 본인이 쓴 <반일 종족주의>의 후속작이었다.
 
 사실, 책 제목을 보고 기대했던 건 예전 전여옥 씨가 문제작 <일본은 없다(1994)>를 출간하자, 반박으로 <일본은 있다(1995)>가 등장했던 것처럼, 작가들이 서로 책으로 반박하는 아름다운 전통(?)이었다. 개인적으로 책에 책으로 응수하는 것이 직접 토론으로 맞붙는 것보다도 세련되고 우아한 방법이라고 생각해 좋아하는 방식이다. 서로 직접 언성을 높이거나 언짢은 표정 등으로 신경전을 벌여 보는 사람도 불편한 기분에 들게 만드는 토론보단야, 독자가 조용히 혼자서 직접 정리된 것을 읽고 판단할 수 있게끔 준비된 두 권을 진상 받는 편이 훨씬 낫지 않겠는가.-물론, <반일 종족주의>를 반박한 <일제 종족주의(2019)>도 있다.-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YES24



 게다가 책에 책으로 반격하는 건 그 자체로 유머러스하다. 저렇게 맞불을 놓을 때에는 비록 공인된 것은 아니지만, 나름 불문율이 존재한다. 


 1. 의제는 그대로 입장은 반대로.

 2. 비판하려는 책과 대구를 이루는 제목.
   
 3. 유사한 소제목, 목차 등의 형식.

 분량도 비슷하면 더욱 좋다. 


 본격적인 싸움에 들어가기 전에 패러디로 막을 올리는 셈이다. 단순 입씨름에서는 볼 수 없는 재미다. 문학에선 김수영의 <김일성 만세(1960>와 이영광의 <박근혜 만세(2016)>의 예도 그렇고 비교적 흔한 방식이다. 문학의 발전부터가 그랬다. 낭만주의를 반박하다 보니 리얼리즘이 나오고 리얼리즘을 반박하다 보니 모더니즘이 나오고, 모더니즘을 반박하다 보니 포스트모더니즘이 나오는 식으로. 

 
밀리터리 SF 3종을 비교한 도표. 필자 편집.


 특히 SF 소설에서 이런 전통이 두드러지는데, 가장 좋아하는 사례를 고르자면 <스타십 트루퍼스(1959)>에서 <노인의 전쟁(2005)>까지의 사례이다. 기존의 기사 소설을 뒤틀어놓은 것으로 시작해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한 <돈 키호테(1605)>와 같이, 그러한 방법으로 명작의 반열에 오른 소설들이다.

 <스타십 트루퍼스>는 동력장갑복(Powered Armor) 개념을 대중화하는 등 현대 밀리터리 SF의 시조격인 작품인데, 한 명의 인간으로서 인정받기 위해 전쟁에 나가, 강력한 갑옷을 입고 혼자서 수 백의 적을 압도하는 주인공이 전투와 전우들과의 교감, 그리고 선생의 가르침으로 정신적 성장을 이루는 모습은 한 명의 군인보다도 옛 기사문학에 나오는 멋진 주인공에 가깝다.

 거기다 나름 질서도 있고, 자유지상주의가 이상적으로 구현된 세계에 가까워서 군국주의 세계를 조명하는 작품 치고는 조금 낭만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는데, <영원한 전쟁(1974)>은 그런 낭만을 철저히 부수는 작품이다. 주인공의 궤도강하와 강화복의 성능을 가감없이 보여주는 전투로 화려하고 멋지게 막을 여는 <스타십 트루퍼스>와 다르게, 살인기술을 가르치는 교관과 땀내 나는 훈련소 막사를 비추며 시작한다.

 군 복무가 힘들어도 마치고 나면 약속된 만큼의 명예와 권리를 보상 받을 수 있는 <스타십 트루퍼스>에 반해, <영원한 전쟁>에선 소모품처럼 쓰이는 병사 목숨, 전쟁을 하면 할수록 피폐해지는 지구의 경제, 교관 자리를 약속해서 재입대했더니 최전방으로 다시 밀어넣는 졸렬한 군대…. 심지어 그 자랑스러운 동력장갑복조차도 맨몸뚱이의 외계인과 간신히 대등하게 만들어주는 성능이다. 흔히 입에 오르는 오웰 선생의 <1984(1948)>와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1932)>의 예처럼, 요소 하나하나가 대칭점을 이룬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노인의 전쟁(2005)> 또한 <영원한 전쟁>을 뒤틀어, 청년에서 시작해 늙어가는 모습과 반대로 노인이 회춘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입는 강화복만을 보여주지 않고, 아예 강화된 인공육체에 정신을 이식하는 등 이것 또한 대칭점으로 가득하다.

 심지어 전쟁을 보는 관점도 다른데, <스타십 트루퍼스>에서는 전쟁도 권리를 획득하려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필연적인 시련에 가깝게 묘사된다. <영원한 전쟁>에서의 전쟁은 지도계층이 자신들의 권위와 이익을 공고히 다짐과 동시에 시민들을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는 좋은 명분에 불과하다. 전자는 개인에게 있어 선에 가까우며, 후자는 악에 가깝다. <노인의 전쟁>에서는 역사적으로 지구의 국가들이 공동체의 생존을 위해 투쟁하는 게 당연했던 것처럼, 자연스러운 현상에 가깝다. 

 이렇게 명확히 대칭되는 작품은 독자로 하여금 서로 다른 주장을 수월하게 비교할 수 있게 해준다. 존재 자체로, 편향을 막아줄 기회가 되어준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이렇게 기존에 익숙한 개념을 비틀어 재창조하는 창작 방식은, 단순 다원성 추구에서 그치지 않고 쉽게 재미를 주는 방법이기 때문에 더욱 권장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