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쏘가리(Looie) -1- 소설-전쟁터에 앉은 파리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자네는 간부가 우습나?"
 이미 불 꺼진 지 한참은 된 담배가 홀든의 치아 사이에서 오르내렸다.
 "아닙니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라이트 하사는 시계가 되었다. 30초 단위로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두 마디를 반복하는 인간 시계. 
 "자네가 기자에게 살랑거리면서, 우리 부대원을 위험에 빠뜨리는 동안, 대대본부에선 작전을, 구상 중이었네. 부대원들도 구하고, 적도 죽일 수 있는 완벽한 작전을."
 격앙된 감정을 애써 누르고 있다는 걸 보여주려는 듯, 억양과 속도를 조절해가며 말하는 솜씨에서 홀든의 연륜이 느껴졌다. 
 "장교를 향한 괜한 적대감이 있을 수도 있고. 혈기에 눈이 멀어 신중한 판단을 못 미더워할 수도 있다는 건 아주 잘 아네. 하지만, 내 이해와 자비심이 방종의 허락은 아닐세."
 "죄송합니다."
 "죄송이 아니라." 
 언성을 높인 홀든은 이내 호흡을 골랐다. 홀든의 허리를 숙여, 푹 숙인 하사의 얼굴을 보았다. 무표정. 단순한 무표정은 아니다. 꼬리 내린 개의 아우라가 느껴지는, 그런. 그걸 확인한 홀든은 이쯤 마무리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홀든은 허리를 꼿꼿이 펴고 헛기침했다.
 "나도 바쁘니 이쯤 하지. 그리고 항상 명심하게. 자네가 거역하는 대상은 눈앞의 간부가 아니라, 대대장님이라는 걸. 해산."
 라이트 하사는 몇 걸음 채 떼지도 않아, 인기척을 느꼈다. 교회 주방.
 "아." 로머 자신도 멋쩍어 웃고 말았다. "양고기 좀 챙기느라. 마침 잘 왔어요. 좀 도와주시겠어요?"
 로머도 엿들으려던 건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다. 어제부터 예상 못 한 일이 많았기 때문에 간부들 얘기 들으려고 식사에 동석했다. 양고기를 푸짐하게 먹게 됐는데, 먹다 보니 소대원들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래서 식사 끝나자마자 곧장 식당에 들러, 남은 고기를 챙기던 중이었는데……. 
 한숨. 라이트는 말없이 들어가 비닐에 고기 담는 걸 도왔다. 어색한 침묵. 이런 건 서로 견디기도 힘들다. 이럴 땐 아예 자리를 피하거나, 다른 얘기로 주의를 흩뜨려주는 게 좋았다. 
 "농가 식구들 보니까, 어제부터 양을 먹더라고요. 전부 먹을 기세로. 동네 사람한테도 막 나눠주는 걸 봤는데, 이상하게 무섭더라고요."
 로머는 라이트 하사가 이런 잡담에 화내지 않을 것을 알았다. 척 봐도 무안해서 던진 빈말에 와준 것이 그 신호였다. 정말 우울하고 예민해져서, 흔히 말하듯 건드리면 터지는 상태였다면, 처음부터 무시하고 지나갔을 것이다.
 "우릴 못 믿는 겁니다."
 말을 받았으니, 이제 적당히 주고받기만 잘하면 된다. 그럼 하사의 기분도 풀어질 것이다.
 "하긴, 아무리 정중하게 말한다지만, 총 든 덩치들이 군표만 내미는데. 그런 건 누구라도 못 믿어요."
 "홀든은 우리 부대를 잘 압니다. 부대원들이 어쩌다 오게 됐는 지도. 다섯 명이나 죽었어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는 건 그래서입니다."   
 "아."
 갑자기 이러니 당황스러운데. 
 "아니, 뭐. 징집된 이유야 대부분 똑같지 않나요? 빈민개병제라고 비꼬는 거 하도 들어서 외워버렸다고요."
 데멜의 징병법은 미국과는 달랐다. 연령은 18세에서 35세로 평범한 수준이지만, 직업이 있거나 대학과 대학원에 재학 중인 사람은 면제된다. 하지만 3개월 동안 직업이 없다면 바로 징집당한다. 설령 해고되어 구직 중이라 할지라도. 
 산업과 경제의 보호와 국가 안보를 모두 해결할 수 있는 훌륭한 법이라고는 하지만, 글쎄……. 로머의 눈엔 좋게 보이지 않았다. 약자를 총알받이로 내세우는 모양새라. 게다가 이미 부작용도 여기저기서 들리고…….
 어쨌든 데멜군의 대부분은 그런 무직자들이라고 보면 된다.
 "좀 다릅니다." 라이트가 말했다. "얘기 들어보면 알겠지만, 대부분 사회에선 유능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그런 사람들이면 깔볼 이유가 없잖아요."
 하사는 말을 하려다 말고, 깨달은 듯 입을 다물었다.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말하게 됐지만, 아무래도 말씀드리기는 곤란합니다."
 그럼 처음부터 말을 말던가.
 "생각해 보니, 먼저 얘기 드리면 선입견만 생길 겁니다. 제가 말을 잘하는 편도 아니고. 본인들 입으로 듣는 게 나을지도 모릅니다. 직접, 대화하면서."
 "그렇게 깊게 캘 생각은 없으니 염려 마세요."
 사실이었다. 원체 호기심 충만한 로머지만, 그렇다고 눈치 없이 이 사람 저 사람 들쑤시고 다니는 사람은 아니었다.
 "홀든처럼 필요 이상으로 의식하지만 않으면 됩니다."
 "그건 항상 조심합니다."
 로머는 고기를 세 겹으로 포장했다. 가면서 냄새 흘리는 것도 걱정됐고, 아무래도 무게가 있다 보니 한 겹으로는 불안했다. 다행히 비닐은 많았다.  
 


 "국경 대신 중립을 버린 뉴스. 편파뉴스 시간입니다."
 폭발로 뻥 뚫린 벙커에선 라디오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모습이 마치 산이 입을 벌리고 말하는 것 같았다.
 6중대 2소대 2분대원들은 모여 앉아 라디오를 듣고 있었다. 
 "안녕, 밖녕!(Hello, Bello!) DJ로사리오입니다. 포크와 나이프는 잠깐 내려놓으시길. 손을 써야 할 소식이 들어왔으니까요. 오늘 새벽, 우리 멋진 국군 장병 여러분들이 이겼습니다. 그것도 W5 전선에서!"
 "쉿, 모두 조용."
 검지를 입술에 올린 플로이드는 들떠서 몸부터 들썩거리고 있었다.
 "그 주인공은 용맹하고 또 용맹한 제4차량화보병사단! 우리 병사들이 못된 아폴라 놈들을 무찔렀습니다. 모두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저 머나먼 서쪽 땅까지 들리도록!"
 "우리 얘기야!"
 소리 지르면서 손뼉을 쳐대는 게, 무슨 복권 추첨이라도 하는 모양새였다. 방송에서 셀럽이 언급해주는데 싫어할 사람은 없긴 하다만, 플로이드는 좀 과했다. 오두방정 떠는 모습에서 광기가 느껴질 정도였으니. 플로이드는 자기 이름도 나올 거라며 주먹을 꼭 쥔 채 집중하고 있었다. 
 DJ로사리오라면 로머도 알고 있었다. 본명은 해리 로스. 데멜 최고의 인기 언론인이니, 모를 턱이 없었다. 데멜이 독립하기 전부터 활동하던 혁명스타. 다른 별명은 미스터 벨라로. 별명은 고속철에서 따왔는데, 말이 고속철처럼 빠르고 막힘없이 죽죽 뻗기 때문에 붙은 별명이다.
 표어가 뉴스치곤 좀 튀는데, 언론인도 사람인 이상 절대중립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아예 처음부터 시민 편에 선다는 의미라고. 
 "웬 거냐?"
 브룩스는 소총을 손질하고 있었다. 옆에 다섯 정은 쌓인 걸로 보아, 후임들 것도 닦아주고 있던 모양이었다.
 "양고기입니다. 기자분께서 갖고 오셨습니다."
 "꽤 하는데?" 
 유탄수 데릭이 로머와 하사가 안고 있던 봉투를 받아주었다. 비닐을 풀자, 고기향이 번짐과 동시에 분대원들이 전부 한자리에 모였다. 그 모습을 보니 챙겨오길 백번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술도 가져오지."
 로켓포 부사수 도미닉은 어느새 한 점 뜯고 있었다.
 "욕심부리지 마."
 브룩스는 손질하던 소총을 내려놓고 손을 닦았다. 
 "이 돼지들아, 또 처먹냐?" 플로이드였다. "딴데서 먹으면 안 돼? 나 뉴스 들어야 한단 말야."
 그러고 보니 다들 한 점이라도 먹으려고 움직이는데, 플로이드만은 움직이질 않았다.
 브룩스의 손가락이 밖을 가리켰다.
 "라디오 들고 나가."
 "내보낼 수 있으면 내보내 보쇼."
 그러더니 플로이드는 빈자리에 라디오를 안고 벌렁 누워버렸다. 그 모습에 벙커에 있던 8명 모두 웃고 말았다. 8명?
 "그런데 2분대뿐이네요? 나머지는 아직 자는 중인가요?"
 로머의 물음에 브룩스가 답했다. 
 "동쪽 산에 수색나갔어."
 "위력정찰이면 5중대만 가기로 했잖아요, 남쪽으로."
 새벽의 전투 이후, 부대는 뒷개울에 눌러앉았다. 전차 지나갈 길이야 다 파놓긴 했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다. 
 군 정보부에선 적군은 중화기도 없고, 사기도 낮아, 쾌속진격하여 일주일 안에 윈스랜드 주를 장악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 말과 달리, 적의 저항은 거셌다. 대전차화기도 있었고, 이틀 만에 벙커를 지어놓기도 했고, 질서 없이 도망가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버티면 버텼지. 
 사단 수색대는 이미 작전 시작하기도 전에 W1 전선으로 차출된 상황이었고, 결국 5중대가 전차 두 대와 함께 위력정찰에 나섰다.
 어쨌건 좋았다. 정찰이 끝나기 전까지는 일단 대기하기로 결정됐기 때문에, 이렇게 노닥거릴 수 있으니. 정작 병사들 과반은 오히려 언제 기습당할지 모른다며 불안해하고 있었지만.
 "아니, 그거 말고." 브룩스가 뼛조각을 뱉었다. "새벽에 봤잖아. 여기에 없던 벙커 이틀 만에 생긴 거. 그래서 동쪽에도 동굴이 하나 있다고 중대장이 정찰 보냈어. 우리만 여기 남기로 하고." 
 "덕분에 우리만 포식하지만."
 도미닉은 뼈까지 쪽쪽 빨아가며 먹었다. 브룩스는 그런 도미닉에게 눈으로 면박을 주었다. 쓸데없는 소리는. 
 "참, 그러고 보니 누가 찾던데." 
 브룩스가 뒤늦게 생각해내곤 로머를 보았다. 
 "저요?"
 "동데멜시보 기자면 너 아니냐? 그, 알렉스라는 사람이 찾더라고. 마을 입구에 있는 트럭에 있다고 전해달라던데."
 맞아. 만나기로 했다. 반드시 만나야 하는 사람이다. 
 "벌써 왔나요? 감사합니다. 그럼."
 "고기 잘 먹었다."
 로머는 손을 올려 보이고 곧장 달려 나갔다. 놓치면 안 되는 사람이니까.


 
 "한가할 거라고 들었는데, 바쁘신 모양이네요?"
 "아뇨. 밥 먹고 막 나오는 길입니다."
 하지만 숨을 가쁘게 몰아쉬는 것이, 누가 봐도 바쁜 일 급하게 마무리 짓고 나온 모양새였다. 
 '선배도 참. 여자면 여자라고 말해줄 일이지.'
 만나기로 한 알렉스는 여자였다. 여자인 줄 알았더라면 개울에서라도 씻고 나왔을 것이다. 
 부대원들과 마찬가지로, 로머의 모습은 처참했다. 머리에서 안 빤 인형 냄새가 나고, 얼굴과 귀 뒤에 쌓인 기름은 코를 찌르는 독한 냄새를 풍겼다. 잠도 모자라 눈도 시뻘겋고, 열린 모공엔 먼지로 검게 물든 건 물론이고. 
 "알렉스 무어에요. 유진 리소스 직원이고요. 애드한테 얘기는 들으셨죠?"
 "예. 그렇습니다."
 다는 못 들은 셈이지만. 알렉스는 윌킨슨의 부탁으로 동데멜시보의 전령을 맡았다. 로머가 찍은 자료들을 전달하는 것이 그녀의 부업이었다.
 사실, 처음에 로머는 이미 사단장에게 부대의 컴퓨터와 팩스를 언제든 써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기 때문에, 그걸로 기사도 쓰고 사진도 보내려고 했다. 하지만, 윌킨슨이 만류했다. 부대 통신망은 군 정보부에서 관리하기 때문에, 패킷이 감청당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면 사전에 보도지연이나 검열을 당할 수도 있고, 군 신문에서 로머의 기사와 사진을 가로챌 수 있게 된다고 했다.
 그 대책이 바로 알렉스였다. 유진 리소스는 이름은 재활용업체지만, 전장 정리도 맡은 기업이어서, 부대를 따라다니다시피 하니까. 
 직원인 알렉스는 마침 윌킨슨과 친분도 있고 해서 전령으로 간택된 것이다. 
 "그럼 부탁드립니다."
 "걱정 마세요."
 메모리카드를 교환한 로머는 가볍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감사합니다. 그럼 다음에 또."
 "잠시만요. 벌써 가시려고요?"
 로머는 어쩐지 쑥스러워져서 멋쩍게 웃었다.
 "기사로 쓸만한 얘기인지는 모르겠는데, 좀 신경 쓰이는 게 있어서요. 따로 알아보러 갑니다."
 "하지만 기자님은 여기서 좀 기다리셔야 할 텐데."
 "뭘요?"
 "보충 인원이요. 곧 올 거에요."
 "아."
 사람이 오는 걸 알았다면 기다리는 게 좋긴 하다. 그리고 오는 사람 중엔 2소대 소대장도 있을 것이다. 마중 나와주면 좋은 인상을 줄 수 있겠지.
 간단히 감사를 표하고 기다리기로 했다.
 "그런데 뭔가요? 그 조사한다는 게?"
 무어는 이미 귀와 입에 시동을 건 상태였다. 보아하니 동료들은 물건 인계받으러 대대장에게 간 모양이고, 그동안 혼자 기다려서 심심했던 모양이다.
 "혹시 시멘트에 대해서 좀 아시나요?"
 무어는 풋 웃었다.
 "그거 새로운 작업 멘트인가요?"
 "아뇨. 그럴 리가." 
 로머는 이틀 만에 벙커가 세워진 일을 말했다. 새벽 전투가 끝난 뒤, 대대장은 이장부터 찾았다. 협조는 명백한 이적행위라면서. 대대장은 데멜군에 대항해 벙커 은폐 공작에 가담했다고 생각했다. 
 이장은 극구 부인했고, 그건 마을 사람 누구를 붙들고 물어봐도 마찬가지였다. 이장은 대대장을 달래기 위해, 양을 파는 일은 절대 없을 거라던 목장 주인을 불렀다. 이장의 말에 목장 주인은 군표를 받았고, 대대장은 만족했는지 더 추궁하진 않았다.  
 로머는 버려진 시멘트 포대를 보고 그것이 지구제임을 알았다. 통조림이나 휴지 따위야 대부분 지구제지만, 지구제 시멘트는 여기서 처음 보는 것이었다. 그래서 시멘트 자체가 좀 특별한 녀석이어서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마을 사람들도 그 정체를 모른다고 하기에 결론을 내리지 못하던 차였다. 선배도 알아본다고는 했지만, 아직 연락은 없고.
 "그거 속경시멘트(Early strength cement) 같은데요?"
 "속, 뭐라고요?"
 "이름 그대로, 빨리 굳는 시멘트에요. 몇 시간 만에 굳는 제품도 있다고 들었어요. 근데 그 이상은 저도 몰라요."
 그게 사실이라면 마을 사람 도움 없이 적군 혼자서 지은 게 맞는 모양이다. 자세한 건 더 들어봐야 알겠지만.
 "그렇습니까. 감사합니다."
 "도움이 됐다니 기쁘네요. 나중에 더 도와드릴 일 있으면 말씀하세요." 
 말하는 사이, 멀리서 엔진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