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프롤로그 -2- 소설-전쟁터에 앉은 파리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로머는 사진기를 쥐고 곧장 달려갔다. 다들 같은 생각이었는지, 담배 피우며 쉬던 군인들도 곧장 일어났고, 장교들은 움직이는 대신 무전을 기다렸다. 달리는 로머의 귀에 스며드는 건 무전 소리와 대화뿐만이 아니었다. 폭음과 총성도 멈추지 않고 들렸다. 아무래도 생각보다 더 치열한 모양이었다. 북쪽 방향으로 난 길은 하나였기 때문에, 합류는 어렵지 않았다.  
 전투가 벌어진 곳은 마을 초입의 산길. 북서쪽으로 이어지는 길 말고도 북동쪽 동굴로 향하는 길이 있었다. 진입각이 높은 경사로였다.
 둘은 들것에 실려 가고 있었고, 셋은 경사면에 그대로 나동그라져 있었다. 몸뚱이 밑의 흙은 피를 함뿍 머금어 축축했다.  
 경사면에 거의 눕다시피 몸을 기대어 대기하는 부대원들. 익숙한 얼굴들이다. 6중대 2소대 사람들. 후위를 맡기로 해서 마음을 놓았는데,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상황을 보니 들어가고 싶긴 한데, 들어가지 못하는 모양이다. 
 경사면은 대강 보아 폭은 사람 스무 명 정도. 경사로 옆은 암벽. 우회로는 없었다. 경사면 한가운데를 따라 늘어진 시신들로 보아, 올라서자마자 당하는 구조인 것 같았다. 시신 중 한 구의 견장이 눈에 띄어 보니, 소대장이었다. 대니얼 포먼. 항상 솔선수범하는 사람이었다. 대원들을 대기시키고 먼저 올라가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투입 명령을 받고 온 3소대장은 분대장을 붙잡고 물었다. 
 "상황은?"
 "둔덕 너머에 기관총이 있습니다. 머리만 내밀어도 맞는 구조입니다."
 2소대 2분대장 윈스턴 라이트 하사. 그렇게 말은 하지만, 정작 자기도 경사로 맨 위 끄트머리에, 아슬아슬한 위치에 자리 잡고 있었다. 
 "수류탄도 이미 세 발 던져뒀습니다. 그래도 멀쩡히 쏘는 걸 봐선, 저 앞에 벙커가 있는 게 분명합니다."
 그 말에 3소대장 찰스 홀든은 코웃음 쳤다.
 "벙커는 무슨. 우리가 받은 지도는 이틀 전 기준으로 만들어진 최신 자료다. 저긴 빈 동굴이야. 네 말은, 놈들이 이틀 만에 벙커를 지었단 말인가?"
 "정말입니다."
 "시끄러." 홀든은 소총을 고쳐 쥐었다. "우리가 처리하겠다. 1분대. 중화기는 빠지고. 돌격조는 분대장 포함 다섯 명. 나랑 함께 돌격한다. 2분대는 2소대랑 자리 바꿔서 우리 엄호하고. 신호는 내가 내린다."
 2소대는 전부 밑으로 내려가 사주경계를 하고, 그 자리를 3소대 인원들이 차지했다. 교대할 때 기류가 그리 좋진 않았는데, 3소대원들의 시선은 2소대를 명백히 깔보는 눈빛이었다. 
 2소대의 별명은 파리소대다. 구더기가 큰 것에 불과한 파리. 짬 주워 먹는 거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파리. 그래서 호출부호도 파리(Mosca)였다.
 무시당하는 2소대의 모습에 로머도 기분이 언짢았다. 같이 다닌 지는 얼마 안 됐지만, 식사도 이동도 2소대와 같이 하기로 돼 있으니, 사실상 한 식구나 다름없었다.
 로머는 볼멘소리를 하는 2소대원들을 두고, 홀든 쪽으로 갔다. 로머의 사진기를 본 홀든의 입매가 하늘로 솟았다. 
 "눈치 한 번 빠르구만."
 그 말대로 눈치껏 자리 잡은 3소대원들을 찍어주었다. 사진기를 누른 그 순간, 경사로 너머에서 기관총이 발사되었다. 주황빛 예광탄 무리가 새벽하늘을 수놓았다.
 빛줄기는 하나. 즉, 저 앞의 기관총은 한 정. 홀든은 상병 이상 되는 대원들을 불러 수류탄을 던지게 했다. 연달아 들리는 폭음. 경사면에 기댄 사람들은 그 진동에 놀라 움찔거렸다. 하마터면 로머도 발밑의 진동에 놀라 미끄러질 뻔했다. 
 폭음이 그치자마자 홀든은 연막탄을 던졌다.
 "아까 얘기한 그대로 간다. 내가 신호하면 바로 시작한다. 알겠나?"
 병사들은 소리를 내는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머릿속의 생각은 같았다. 먹이를 노리는 자칼의 눈빛. 그런 만큼 행동에 빈틈은 없을 것이다.
 연막탄은 스스로 몸을 녹여 구름을 피워올렸다. 새벽빛으로 물들어 푸르스름한 연기는, 시간을 먹고 덩치를 불렸고, 어느새 둔덕 밑에서도 머리를 보일 정도가 되었다. 
 "모두 전진!"
 홀든의 고함에 군인들이 움직였다. 그 순간.
 총탄이 연막을 뚫고 나왔다. 고함을 들은 건 부대원만은 아닌 모양이었다. 보이지 않는 탓에 마구잡이로 쏘는 듯했지만, 둔덕 너머의 그 좁은 길은, 전부 기관총의 사정거리. 전부 살상구역이었다. 부대원들은 뒤늦게나마 방향을 바꾸려고 했지만.
 "어웁, 컥!"
 비명은 나오기도 전에, 폐에서 총탄과 함께 찢어발겨 졌다. 찢긴 피부는 장기를 지탱해주지 못했다. 단 수 초 만에 둔덕 너머는 정리됐다. 그 공간에서 숨을 뱉는 건 미처 타지 못한 연막탄과 달궈진 기관총뿐.
 "어쿠!"
 총성에 놀란 홀든은 돌격하기도 전에 미끄러지고 말았다. 경사로를 구르며 떨어진 그를, 밑에 있던 소대원들이 부축해주었다. 휘청거리긴 해도 일어서는 걸 보아, 어디 부러지거나 하진 않은 모양이었다. 
 엄호를 맡은 나머지 대원들은 머리를 푹 숙이고 있었다. 죽은 대원들의 모습이, 감긴 눈꺼풀 안에서도 잔상처럼 재생되었다.
 "거기 다 내려와." 홀든이었다. "다시 2소대랑 자리 바꿔. 보고하고, 작전 다시 세운다."
 그러자 3소대원은 전부 기다렸다는 듯 모두 내려왔다. 2소대원들 몇몇이 궁시렁거리는 걸, 라이트 하사를 비롯한 선임병들이 달래느라 고생이었다.
 "기자 양반은 거기 남을 참이오?"
 "예, 아무래도."
 더 볼 일 없다는 듯 홀든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로머는 문득 사진기를 바라보았다. 사진기 안에는 대원들의 멋진 모습이 들어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용맹한 모습으로, 누군가는 긴장한 모습으로, 누군가는 걱정하는 모습으로. 그렇지만 이제 와서…….
 로머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더 깊이 생각해봐야 변하는 건 없다.  
 "진짜 답이 없구만…." 
 라이트 하사였다. 어느새 로머의 옆에 2소대원들이 모여있었다
 "여긴 경사가 높아서 장갑차량은 못 올라옵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만 가봐야……."
 라이트는 카터 브룩스 상병과 논의 중이었다. 
 "맞아. 하지만, 빨리 해결봐야지. 여기서 부대가 묶여있다간, 작전 실패고 뭐고 우리부터 힘들어지게 돼."
 "당장 죽을걸요?" 브룩스의 말에 마빈 플로이드 상병이 껴들었다. "포먼도 이제 죽고 없잖아요. 본부 지시도 뻔해요. 다음 공격은 홀든 저 새끼 지시받고 우리가 돌격할 걸요? 그리고 그대로 뒈지고……."
 "입 조심해."
 브룩스의 꾸중에 플로이드의 째진 목소리도 줄어들었다. 브룩스 상병. 나이가 33으로, 병 계급 중에선 제일 나이가 많았다. 게다가 아폴라안전보장공사(Apolla Safety Guarantee Corp.) 출신이어서 전술에 관해서도 밝았다. 그래서 2소대원들이 많이 의지하는 편이었다. 그렇지만 그런 그도 지금은 난처하기만 했다.
 "벙커가 있는 건 확실해. 그런데, 거리부터 시작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이니……."
 "아까부터 그랬잖아요. 유탄부터 갈기자니까."
 "소용없어." 라이트가 답했다. "수류탄이 먹히지 않는다면, 유탄도 먹히지 않아."
 브룩스도 끄덕였다.
 "맞는 말이야. 게다가, 거리가 안 맞으면 터지지도 않아."
 결국 제자리걸음이었다. 떠드는 소리에도 기관총은 병사들이 아직 돌입할 생각이 없다는 걸 아는 건지, 조용했다. 홀든도 구태여 말리지 않고 본부의 연락이 올 때까지 담배를 피워도 좋다고 허락을 내렸다. 
 긴장은 어느새 풀어졌다. 그것과는 별개로, 문제의 실타래는 아직도 엉켜있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을까?'
 인간의 감이, 무언가 말하고 있었다. 뇌리엔 갖가지 생각과 감정이 얽혀 아무것도 못 하지만, 분명 방법이 있을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는 건 네 일이 아니야.' 
 로머에겐 여기에 나설 의무는 없다. 그래도 머리를 굴렸다. 그 순간 뇌리에서 다른 목소리가 속삭였다.
 '지켜보기만 하면 되는 거야.' 
 "아."
 그런 방법이. 로머는 사진기를 둔덕에 걸치고 재빠르게 셔터를 누르고 잡아끌었다. 섬광과 함께 기관총이 다시금 불을 뿜었다. 
 "뭐 하는 거야!"
 "아니, 잠시만요."
 브룩스의 호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로머는 사진기를 살펴보았다. 로머가 한 박자 빨랐다. 사진기는 손상이 없었다. 그리고 액정에서 방금 찍은 사진을 골랐다. 다행히 번짐 없이 찍혔다.
 '역시.'
 둔덕 너머엔 벙커가 있었다. 곧장 브룩스 상병에게 화면을 보여주었다. 
 "벙커가 있을 줄 알았습니다." 라이트가 말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튼튼해 보이는데?" 
 콘크리트 벙커는 산 밑에 움푹 들어간 상태로, 제일 안쪽에 기관총구가 있고, 그 옆에 철문이 있는 형태였다. 쇠 덮개로 열고 닫을 수 있는 총구. 콘크리트 벽은 가장 두꺼운 부분이 어림잡아 1m는 되는 듯했다. 
 브룩스는 턱 밑을 쓰다듬었다.
 "대충 거리를 보니 십오 미터는 넘어 보여. 좀 더 가까울 줄 알았는데." 
 플로이드가 자기 뒤의 병사를 가리켰다. 
 "그럼 이걸 쓰면 되겠네요."
 RPG-7. 휴대용 로켓포였다. 누군가 탄두에 상어 얼굴을 그려놓아 어울리지 않게 유쾌한 느낌이 들었다. 
 "전차도 잡는 놈이라고. 그럼 벙커도 뚫겠지."
 "글쎄." 브룩스는 치우라고 손짓하다, 이내 다시 손으로 로켓포를 쥔 대원을 불렀다.
"잠시만, 그거면 충분히 될 것 같아. 가방 좀 줘봐."
 로켓포 부사수가 탄두 가방을 내밀었다. 브룩스는 끝이 뭉툭한 탄두를 꺼내 조립하기 시작했다.
 "그거 플로이드한테 넘겨." 브룩스가 말했다. "벙커 가운데. 같은 곳에 맞춰야 해. 실수하면 안 돼."
 "아직 탄 많구만 뭐." 플로이드는 능글거리는 얼굴이었다. "뭐, 그래도 오사마리(Run out, 収まり)는 제 전문잉게, 걱정 붙들어 매쇼잉."
 로켓포를 받아든 플로이드는 로머를 불렀다. 쏘기 전에 사진을 보면서 위치를 가늠할 요량이었다. 
 "뭘 어떻게 하려는 건가요?"
 로머가 브룩스를 보았다.
 "이 로켓포에 대해서 알고 있나?"
 로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영화에서 본 게 전부라서……."
 "그럼 설명하지. 이 뾰족한 탄두가 대전차 탄두."
 손가락 끝엔 상어 머리 모양 탄두가 있었다. 마름모꼴에 가까운 실루엣.
 "성형작약탄이라는 건데, 대충 깊은 구멍을 판다고 생각하면 돼. 그리고 이건 열압력탄두."
 다음은 조립을 마친 탄두. 끝이 납작하고, 탄두 가운데는 뭉툭한 것이, 음료수 캔 같은 실루엣이었다. 
 "분말 상태의 연료를 사방으로 뿌린 다음 터지는 탄두. 예를 들어서 저런 벙커 같은, 밀폐된 공간을 제압하는 탄두라고 보면 돼. 모서리가 있어도 분말은 꺾이면서 퍼지지. 그, 연기처럼. T자 모양이면 T자 모양에 맞게, 그런 상태에서 터지면 모서리 끼고 숨거나 하는 것도 의미가 없지."
 브룩스는 이어서 대전차 탄두도 하나 더 조립했다.
 "하지만 그냥은 제압 못 해. 저렇게 꽉 막힌 벙커라면 분말 자체가 들어가지 않을 테니 의미가 없어. 그래서 구멍을 먼저 뚫을 필요가 있어."
 로머도 대충 알 것 같았다. 먼저 대전차 탄두로 구멍을 뚫는다. 뒤이어 발사된 열압력탄두는 분말을 벙커 내부 곳곳에 뿌린 뒤 폭발. 그러면 깔끔하게 제압된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두꺼워 보이던데, 뚫을 수 있을까요?"
 걱정 없다는 듯, 브룩스는 웃어 보였다.
 "기관총이 있는 쪽은 다른 부분에 비해 훨씬 얇으니까. 사람이 서서 기관총을 거치해둬야 하니까, 아무래도 미터 단위로 채울 순 없지."
 과연.  
 몇 분가량 보더니 감을 잡은 플로이드는 바로 로켓포를 둔덕에 걸쳐두고, 머리는 둔덕 아래로 낮추었다. 그걸 본 브룩스는 수류탄을 쥐었다.
 "내가 신호를 보내면 사격한다. 알았지?"
 소대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우리 멋대로 진행해도 괜찮겠습니까? 홀든이 가만히 있진 않을 텐데?"
 "미안하네. 욕받이 좀 부탁하지."
 라이트의 물음에 브룩스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라이트의 입에선 한숨만이 나왔다.
 "하……. 또 입니까? 알겠습니다." 
 이래서야 누가 분대장인지 모르겠다. 어찌 됐든 준비는 금방 끝났다. 플로이드가 좌우를 둘러보았다. 
 "다들 비켜."
 방아쇠를 당기자, 로켓포에서 폭음이 나는 동시에 둔덕 너머에서도 폭음이 들렸다.
큰 진동에 속이 울리는 것 같았다. 낚아채듯 내린 로켓포에 브룩스가 열압력탄두를 끼웠다. 그리고 다시 팔만 내밀고 발사.
 다시 폭음. 속이 울리는 것 같았다. 튀어나온 콘크리트 파편이 철모를 두드려댔다. 깡통과 북을 두드리는 듯한 소리가 울렸다. 무슨 단막극에서나 나올 법한 우스운 소리였다. 
 파편이 더 날아오지 않는 걸 확인한 브룩스는 곧장 수류탄을 던졌다. 다시 폭음과 진동. 하지만 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어헙!"
 적의 비명과 신음이 들린다는 점이다. 브룩스는 재빨리 소총을 들고 일어섰다.  
 "이제 쏴! 고개 들어도 돼!"
 총탄의 비가 부서진 벙커로 쏟아져 들어갔다. 잘 보이진 않아도 소리로 알 수 있다. 적이 저항도 못 하고 쓰러져가는 것을. 로머도 사진 찍는 것을 잊지 않았다. 오래 걸릴 것만 같았던 농성전은 2시간도 안 돼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