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프롤로그 소설-전쟁터에 앉은 파리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눈앞의 광경을 어떻게 글로 옮겨야 할지 모르겠다. 고작 기자 3년 차여서가 아니다. 누구라도, 이 모습을 보면 말을 잃을 것이다. 진상을 알면 더더욱.
 로머의 눈앞에선 십여 대의 전차들이 새벽안개 속에서 밀밭을 끼고 길을 따라 빙글빙글, 회전목마처럼 돌기만 하고 있었다. 땅은 시간이 지날수록 패여가고, 엔진소리는 새와 양의 울음을 먹어 치우고, 매연은 빵가마에서 나오는 구수한 냄새까지 덮어버렸다. 주민들은 잠도 못 자고 나와 그 광경을 불안한 듯, 지켜보기만 하고 있었다. 그중 하나는 밭의 주인인지, 심은 지 얼마 안 됐다며 안절부절못했다.
 부대원들도 어처구니없기는 매한가지였는지, 그 풍경을 두고 저마다 다른 목소리로 떠들어댔다.
 초안을 대강 적은 로머는 전화기를 들었다. 액정이 넓은 스마트폰이어서 빛이 많이 나기는 하지만, 등화관제 지시가 떨어지지 않아 담배 불빛이 반딧불이처럼 피어올라, 마을 곳곳을 차지하는 판이니 상관없을 터였다.
 "녹음 켜뒀다. 천천히 말해."
 편집기자 애덤 윌킨슨. 로머의 담당이자 맞선임이다. 
 느릿한 목소리. 짜증은 한 올도 섞이지 않은 그 말투에, 로머는 내심 감사를 느꼈다. 이미 얘기가 돼 있다지만, 새벽잠을 깨웠는데도 그런 말씨였으니…….
 로머는 눈앞에 보이는 전차떼부터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 광경 자체는 글로 적자면 참 간단하지만, 전후 사정과 함께 적자니 참으로 난감한 것이었다.
 이 마을은 일명 뒷개울(Backwater)로 불리는 신망리(New hope village, 新望里)로, W5 전선의 시작이자 첫 목표인 지역이다. 
 해발고도 800m가 넘는 산들로 둘러싸인 험준한 산악지역인데, 진입하려면 협곡으로 들어와야 할뿐더러, 도로는 포장도 안 된 데다 옆으로 빽빽한 숲까지 있어 좁았다. 그렇기에 부대의 모든 차량은 위험을 알면서도 한 줄로 줄지어 들어와야 했다. 게다가 공간 문제로 이렇게 큰 차량이 이동할 땐 길목이 꽉 막혀 앞 차량이 멈추면 뒤는 돌아갈 공간도 없어 꼼짝없이 갇히게 된다. 
 이런 지형을 본 제4차량화보병사단장은 공병대부터 투입해 길목을 넓히며 나아가자고 제안했으나, 군단장의 지시로 3월 1일 어제부터 전진하기로 했다.
 아니나 다를까, 우려대로 선두의 전차가 휴대용 로켓포를 맞고 불타버렸고, 길목은 막혔다. 두 개 소대는 도로 옆 숲으로 들어가 싸우면서 전진하고, 나머지는 빗발치는 총탄 속에서 직접 나무를 베고 폭약을 터뜨리고, 전차가 전차를 밀어 치우는 대공사를 진행했다. 그나마 사상자는 전차병 셋이 전부였지만, 낭비한 시간은 11시간. 
 그런 고생 끝에 마을까지 왔다. 그나마 마을에서의 전투는 적군이 공용화기가 기관총뿐인 부대 40명이 전부여서, 전차가 있는 4사단이 사상자 없이 끝냈다.
 문제는 그다음부터. 마을 남쪽에 있는 개울을 건너기 위해 전차가 움직였으나, 하필 개울의 길이와 각도가 참으로 절묘하게도 폭 3.5m, 깊이 2.5m에 진입각 60도. 그야말로 정석적인 대전차호의 요건을 갖추었기에, 전차는 우렁찬 소리와 함께 개울에 푹 박혀버리고 말았다.
 마을 동쪽에 개울을 건너는 다리가 있긴 했지만, 통나무를 얼기설기 엮어 만든 것이라, 하중이 시원찮았다. 그래도 트럭까지는 건널 수가 있었기 때문에 트럭은 모두 건넜지만, 문제는 전차였다.
 아무리 봐도 30톤이 넘는 쇳덩이가 건널 수 있는 다리가 아니었고, 그걸 굳이 시험해보려는 사람도 없었다.
 결국 병사들이 도랑을 파 전차가 건널 수 있는 각도로 만드는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와중에 2대대 6중대장은 의견을 냈다. 다시 기습을 받는다면 전차가 1순위 목표가 될 게 분명하니, 대기하는 동안 전차는 계속 움직이게 하자는 이야기였다. 전차가 움직이면 조준을 하기 힘들어지니, 적이 쏘지 못한다는 논리였다. 대대장은 좋은 생각이라며 흔쾌히 받아들였고, 그 결과가 바로 저 광경이다. 회전전차(Tank-go-round). 
 그래서 제목도 '전차 퍼레이드: W5 전선에서의 첫 승리'로 붙였다. 윌킨슨은 풋 하고 웃었다. 
 "제목 너무한 거 아니냐."
 사실, 로머는 제목 짓는 감각이 떨어지는 편이었다. 지구에 있을 적에도 제목 가지고는 그다지 좋은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까 선배님이 있는 거죠."
 "짜식……." 
 목소리 톤으로 보아 이제 끊을 참인 모양이었다. 윌킨슨은 통화를 끝내기 전, 전부터 으레 하던 충고를 덧붙였다.
 "너는 기자라는 걸 명심해라. 문제를 해결하는 건 네 일이 아니야. 지켜보기만 하면 되는 거야. 목숨 보전과 보고가 최우선이다. 거기서 비겁한 놈 소리를 듣더라도 그래야 해. 그게 네 일이고 의무니까. 알겠지?"
 "염려 마세요."
 통화가 끝나자마자 곧장 사진기부터 들었다. 어느 언론사가 그렇듯이, 동데멜시보(The East Demel Times)도 취재기자에게 요구하는 건 사진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사진이 곧 돈이니까. 
 아직도 전차는 돌고 있었다. 그런데 로머가 보기엔 움직인다고 안 맞을 것 같진 않았다. 2미터라는 간격이 있긴 했지만, 로켓포에겐 그리 긴 간격이 아닌 듯 보였다. 거기에 전차들이 한 군데만 계속 도는 데다, 열 대가 넘었기 때문에 원하는 부위는 아니어도, 전차 자체를 맞추는 건 어렵지 않아 보였다.
 어쨌건 그것은 군인의 일. 로머는 로머의 일을 해야 했다. 새벽안개 속에서 전조등을 켜고 빙빙 도는 전차의 모습은 나름 멋있지만, 신문에 실릴 걸 생각해야 한다. 윤곽이 보이긴 하지만, 어두워서 윤곽만 보이는 정도이기 때문에 그대로 찍는 건 그리 좋지 않은 선택이다. 
 화각은 60도. 우선 3대 정도 잡히게 두고 셔터 세 번.
 세 번 번쩍임과 동시에, 누군가 흙을 차며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로머가 돌아보자, 흙 얼룩 한 점 없는, 깨끗한 군복을 입은 백인 사내가 있었다. 제럴드 랜달 중위. 6중대 정훈장교. 정훈과장이 오지 않고 그가 온 것은 로머가 6중대 2소대에 있기로 한 탓이리라. 
 "무슨 일이시죠?"
 뻔했다. 전차들을 찍지 말라는 것이지. 아무래도 상황이 그러하니, 숨기고 싶은 건 당연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로머는 알면서도 태연하게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물었다. 변명을 준비하려면 시간이 필요했으니까. 하지만 랜달은 달랐다.
 "저기, 다른 걸 찍으시는 건 어떻습니까? 더 좋은 사진이 나올 텐데."
 "아, 그렇습니까?"
 준비하던 변명을 도로 삼켰다. 그러고 보면 랜달은 비교적 융통성이 있는 편이어서, 대부분의 장교처럼 강압적으로 나오거나, 무조건 막지는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로머가 민간인이라는 사실을 다른 장교보다 의식하는 편이었다.  
 로머는 북쪽을 보았다. 전장 정리를 하는 군인들. 죽은 군인들 무기와 탄약을 추려내고, 군복을 뒤져 유품을 한군데에 모은다. 군복을 벗기는 대신 인식표를 떼어 수레에 하나하나 실었다. 수레가 향하는 곳은 마을 북쪽 어귀에 있는 공동묘지였다. 마침 묘지가 있으니 여기다 묻으려는 거겠지.
 "거기 말고."
 정훈장교가 가리킨 쪽은 문제가 된 개울 남쪽이었는데, 야전삽을 쉴 새 없이 놀리는 옆에서 군인들이 개울에 들어가 경계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참호 속에서 총을 겨누는 모양새가 영화 속 한 장면이 떠오를 정도로 멋졌다. 포신이 하늘로 꺾인 채 빠진 전차는 빼야 군에선 좋아할 것 같지만, 그것까지 넣어도 괜찮은 그림이 나올 것 같았다. 
 "괜찮네요. 보는 눈이 있으시네."
 "별말씀을."
 로머가 순순히 따르자, 정훈장교도 군말 없이 물러났다. 하지만 눈은 로머에게서 떼질 않았다. 엉뚱한 걸 찍지 말라는 게지.
 전차도 전장정리도 구미가 당기는 소재였지만, 아무래도 그냥 찍기엔 눈치가 보이니 일단 따르기로 했다. 후딱 찍고 나서 미처 못 찍은 것도 마저 찍을 생각이다.
 대충 보니 개울 밖에서 찍어도 될 것 같았다. 아니, 개울 안에서도 몇 장 찍어야겠다. 그 왜 있잖은가. 월남전 당시 참호 속에 몸을 묻은 군인들의 사진. 좁고 정적이지만 현장감은 뛰어나다. 로머도 이번엔 그런 사진을 찍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화각은 55도로 두고. 서서 세 번. 자세 낮추고 세 번. 
 '아뿔싸.'
 순간 번쩍이는 섬광에 놀란 군인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전부 로머를 보았다. 
 "그냥 사진 찍는 거에요. 사진, 사진. 죄송합니다."
 뒤늦게 쏟아지는 시선에 놀라 급히 사과했지만, 따가운 시선은 거두어지질 않았다. 잘 보니 몇 명은 총구까지 겨누고 있었다. 자신을 똑바로 향한 총구. 그 좁은 심연을 보니 모골이 송연해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로머는 플래시 기능을 끄진 않았다. 
 아니, 실은 끄지 못하는 것이다. 사진기는 아폴라 행성에 오자마자 산 캐논 EOS 5D mark II. 성능은 좋았지만, 사용법을 몰랐다. 설명서가 있긴 했지만, 지금 읽기엔 너무 어둡기도 했고. 
 일단 당장 전투도 없으니, 지금은 이대로 찍고 날이 밝으면 천천히 볼 생각이었다.
 그때였다.
 도도도독. 낡은 북을 치는 것 같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기관총 소리다. 방향은 북쪽. 소리를 대강 들으니 타고 왔던 산길 쪽이었다. 로머는 바로 움직이지 않았다. 사실, 좀 전에도 경계하던 군인들이 졸다가 총을 잘못 만져 소동이 일어났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가봐야 의미가 없다. 그래서 다시 개울을 찍으려고 들어간 순간.
 도도도독. 따닥. 따닥. 따다닥. 소총 소리도 함께 들렸다. 
 전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