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을 해설하는 작가의 방법 (2): 황석영, <무기의 그늘(1985)> 감상-소설

전쟁을 해설하는 작가의 방법 (2):
황석영, <무기의 그늘(1985)>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청룡부대와 교대하는 맹호부대(1966. 7. 22.). 우리역사넷.
 
 터널 비전(Tunnel vision). 동굴을 볼 때, 주변은 보이지 않고 빛이 들어오는 끝자락만 보이는 것처럼, 시야가 매우 좁아져 바로 앞만 보이는 현상을 의미하는 말이다. 단순히 안구나 뇌의 이상으로 생기는 경우도 있지만, 스트레스 등의 심리적 요인으로 생기기도 한다. 예를 들자면 전장의 군인들. 극한 긴장 상황에 놓여 생기는 스트레스로 인해 터널 비전을 겪는다. 옆의 상황은 보이지 않고, 자신의 적. 자신의 표적만 보인다.

 어떤 사안이나 역사 등을 이야기할 때 사람마다 이야기가 다른 것도 이와 비슷하다. 자신의 감각과 생각을 지배하는 경험이, 시야를 좁게 만든다. 그리고 사건은 한 사람의 경험으로 전부 설명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대부분의 사건은 자신이 보고 듣고 겪은 것만으로도 설명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우리는 대부분 고민 없이 지내도 괜찮다.

 모든 사건이 이렇다면 참으로 다행이겠지만, 분명 예외도 있다. 자신이 겪은 것이 도대체 뭔지 알 수 없는 때가 있다. 뭔가 말로 나오기도 하고, 나름 앞뒤가 맞게 설명할 수 있긴 한데, 딱 이렇다 하고 말하기는 참 곤란한 경험. 그러한 체험이 작가를 만드는 것 같다. 승화라는 게 결국은 그런 체험을 자신에게부터 이해시키려는 시도니까.

 그렇기에 작가들은 자신의 체험을 설명하기 위해,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하고, 나름의 결론을 내린다. 하지만 경험만으로 설명하기엔 한계가 있다. 사건의 맥락은, 그 사건의 규모를 따라간다. 사건이 크다면 당연히 한 사람이 볼 수 있는 것도 좁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체험이 그 큰 그림을 볼 수 있는 위치에서 이루어졌다면? 

 황석영은 월남에 파병돼 전투병으로 복무하다, 청룡여단본부 CID(범죄수사대)에 복무하며 암시장을 감시했다. 그렇기에 그는 월남전의 전방과 후방. 그리고 감춰진 곳까지 전부 보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무기의 그늘>은 그런 경험을 토대로 쓰여진 소설이다.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무기의 그늘>만의 이야기


 전쟁을 다룬 창작물의 주인공은 보통 몇 가지로 한정된다. 최전선에서 복무하는 군인이거나, 부대 지휘관이거나, 병사로 구르다 진급해 지휘관이 되는 등. 전투에서 벗어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당연하다. 이용자들이 전쟁 매체에서 찾는 건 전투니까. 이따금 자전적인 이야기여서 난민인 경우도 있지만, 결국 극한 상황 속에서의 갈등이 중심임은 마찬가지다.

 이 소설의 주인공 안영규는 여타 소설들과는 달리 남베트남의 암시장을 감시하는 수사대원이다. 직별부터가 다른 만큼 기존의 전쟁 소설에서 보기 어려운 모습을 많이 보여준다. 

 어째서 수사관들의 용돈벌이를 눈감아주는가? 수사관들이 암시장을 감시하려면 직접 암시장에 뛰어들어서 암거래를 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생기는 작은 이익을 챙기는 것까지 간섭하면 자율성도 떨어질 뿐더러, 어차피 국가 입장에선 푼 돈이다. 

 어째서 전투식량(C-ration)만큼은 미군이 반출을 금지하는가? 갖고 다니기도 편하고, 보관도 용이하고, 흔적 감추기도 편한 미군의 전투식량을 북베트남군이 확보하면, 그만큼 북베트남군의 기습 공격이 쉬워지기 때문이다.
 
 어째서 미군은 군표를 쓰는가? 파병지의 경제가 본국의 경제에 영향을 주지 못하도록 분리하기 위함이 첫 번째이고, 두 번째는 파병지의 경제를 손쉽게 통제하기 위함이다.

 어째서 사과가 중요한가? 월남에서 자라지 않는 사과는 미국에서 들어오는 값비싼 수입품이기에, 부자들만이 먹을 수 있는 특권의 상징이니까. 

 이런 식으로 다른 전쟁 소설에서 잘 다루지 않는 부분이 많이 다뤄진다. 그대신 전투 장면 자체는 적다.-이야기의 초점이 전투가 아니어서 그렇다. 황석영의 전투 표현 실력은 <탑(1970)>을 보면 알 수 있다.-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군상극


 전쟁소설이 으레 그렇듯이, 인물의 스펙트럼도 다양한 편인데, 부패한 남베트남 장교 팜 꾸엔 소령. 월남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매춘부 미미. 유쾌한 월남인 수사대원 토이 등. 하나하나 개성이 강하고 매력적이다. 


샘플

 팜 꾸엔은 그런 때 보면 매우 단순하고 순진한 사람 같았다. 그러나 그는 월남 제2군사령부에서도 수완가로 통하는 장교였다. 팜 꾸엔은 싸이공에서 대학을 나왔고 나트랑의 육군간부학교를 나왔다. 그는 영어와 불어를 유창하게 말할 줄 알았다. 그는 교육생 때부터 동기들 사이에 두각을 나타냈다. 그것은 실로 단순한 착안이었다. 미 고문인 육군 중령의 의견을 두둔하는 역할을 해냈던 것이다. 고문관이 우계에서의 판초 사용법과 말라리아를 예방할 때 바르는 모기약에 대해서 설명했다. 그것은 교과서였다. 한 우수한 후보생이 베트남의 우계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교과서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바르는 모기약은 맞지 않는다. 월남의 우계는 중부에서는 9월부터 시작해서 3월까지다. 그러나 집중적으로 내리는 것은 아니고 하루에도 몇번씩 갠다. 모기약을 바르면 약은 곧 비에 씻겨가버린다. 비가 걷히면 풀숲과 나뭇잎 아래 숨었던 지독한 정글 모기가 덤벼든다. 따라서 미국에서의 모기약은 여기서는 쓸모가 없다. 대신에 말라리아 예방약이 필요할 것이다. 또한 판초우비는 정글 매복전에 맞지 않는다. 판초에 떨어지는 빗소리는 땅이나 숲에 떨어질 때와는 다르다. 그러니까 적에게 먼저 발견될 것이다. 그 대신에 얇은 비닐 조각의 망또가 나을 것이다.’ 이런 의견은 물론 해방전선이 사용하는 바를 그대로 옮긴 것이었다. 고문관은 몹시 난처하게 되었다. 그는 전술을 가르치러 왔기 때문이다. 그의 전술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미국은 미국식의 전쟁 개념으로 이들을 훈련시키고 끌어낼 재간이 없는 것이다. 그때 꾸엔 소령이 손을 들고 일어났다. ‘지금 그 반론은 베트남에서의 객관성이 결여된 견해다. 우리 전투는 주간 수색, 야간 매복이다. 야간에 이동하는 것은 적뿐이다. 우리는 개인화기에 있어서나 화력 지원에서나 세계 최고의 수준이다. 비옷에 대한 탁상공론으로 이러한 전력의 우세가 감소되지는 않는다. 적이 먼저 알면 포를 수십발 날려서 빠져나가기 전에 섬멸할 수 있다. 모기약도 마찬가지다. 비에 씻기면 또 바른다. 모기약은 얼마든지 만들어낸다.’ 그것은 아주 적절하고 자신있는 답변이라 예리하게 물었던 후보생의 질문은 오히려 패배주의적으로 들릴 정도였다. 고문관은 곧 이 우수한 장교를 주목했다. 그는 꾸엔을 연락장교로 임명했다. 꾸엔은 가장 미국적인 사고를 갖춘 장교로 지목되었고 그것은 미군이 원하는 바였다. 그는 빠르게 진급했고 곧 람 장군에게 추천되었다. 꾸엔은 장군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나 미리 알고 있었다.

 예시를 들자면, 팜 꾸엔의 경우 부패한 장교라는 전형적인 조연이지만, 매력은 주연 못지 않은데, 인맥으로 출세하는 부패한 장교상과는 달리, 훌륭한 처세술과 머리로 출세를 하는데, 이 과정과 착상, 그리고 전략 등이 굉장히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그리고 이 인물이 자기 이익을 챙기는 과정에서 미군과 남베트남군의 관계, 미군이 만든 전략촌 계획의 허와 실, 군인들의 부정부패 과정 등이 조명된다. 수사대원 안영규 못지 않게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인물들의 욕망이 작품의 큰 스케일에 비해 굉장히 수수하다는 점이 강조되는데, 주인공 안영규는 그저 무사히 집으로 살아돌아가고 싶어할 뿐이고, 부패한 장교 팜 꾸엔도 결국은 가족들이 잘 먹고 잘 살기를 바랄 뿐이며, 미미도 그저 가게를 차려 먹고살기를 바랄 뿐이고, 한국군 병사도 그저 테레비나 냉장고 같은 걸 집에 하나 가져가고 싶을 뿐이다.

 비중 있는 인물 중에서 야망이 있는 건 베트민의 주인공 팜 민 정도인데, 그 야망은 북베트남이 승리해 외세에서 독립하는 것에 자신이 힘을 보태는 것이다. 그나마도 소꿉친구와의 사랑을 포기하며 눈시울을 붉히고, 잠입 공작보다도 자동소총의 감촉을 그리워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사실 젊은 시절에 자연히 끓어오르게 되는 잠깐의 혈기이다.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독특한 표현


 이 소설은 기법이 굉장히 독특해서 다시 보게 되는 소설인데, 우선 타국인 간의 대화를 표현하는 방식이 참 독특하다. 안영규가 월남인 토이나 미국인들과 이야기할 때는 대화가 둘 다 문어체로 표현된다. 대화가 한국어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는 걸 곧바로 알 수 있도록 초벌번역에서 느껴지는 어색한 느낌을 부여한 것이다. 따로 설명이 없어도 직관적으로 받아들여지면서도 이국적인 느낌이 나기 때문에, 굉장히 좋아하는 기법이다.

 그리고 이 소설에선 이따금 장 사이에 안영규가 쓰는 것 외에도 미군의 수사 보고서가 나오는데,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1938)>에 등장하는 르포처럼 아무 예고도 없이 삽입된다.

 둘 다 등장인물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만으로는 볼 수 없는 전쟁의 이면을 보여주려는 의도로 작성된 것이지만, 방법은 상당히 다르다. 오웰의 르포는 여과 없이 작가의 생각과 자료를 그대로 적은 것이라면, 황석영의 보고서는 형식은 달라도 보고서 그 자신이 소설의 일부라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 

 누구의 방법이 옳은 지는 말하기 참 곤란하다. 하지만 나는 황 작가의 방법이 더 마음에 든다. 몰입을 깨뜨리지 않으니까.

 
샘플

 PX란 무엇인가. 큰 함석창고 안에 벌어진 디즈니랜드. 그리하여 지친 병사는 피 묻은 군표 몇장으로 대량 산업사회가 지어낸 소유의 꿈을 살 수가 있을 것이다. 오리도 토끼도 요정도 기계가 되어 뛰고 웃는다. 포장지와 상자에서는 느끼한 기름 냄새가 나고 그것은 꽃처럼 아름답다. PX란 무엇인가. CBU(집속탄) 폭탄 한개로 길이 일 마일, 너비 사분의 일 마일에 걸쳐서 백만개 이상의 쇠파편을 뿌릴 수 있고, 삼백 에이커를 단 사분 동안에 동물과 식물이 살지 못할 고엽(枯葉)지대로 만들 수 있는 기술을 가진 나라의 국민들이 사용하는 일상용품을 파는 곳이다. PX란 무엇인가. 아메리카는 세계에서 가장 크고 가장 위대한 나라입니다,라는 표어가 적힌 방패를 들고 로마식 단검을 들고서, 성조기의 옷을 입고 낯선 고장마다 나타나는 엉클 쌤의 지붕 밑 방이다. 원주민을 우스꽝스런 어릿광대로 바꾸고 환장하게 만들고 취하게 하며 모조리 내놓게 하고, 갈보와 목사와 무기 밀매업자가 사이좋게 드나들던 기병대 요새의 잡화점이다. 그리고 PX는 바나나와 한 줌의 쌀만 있으면 오순도순 살아가는 아시아의 더러운 슬로프헤드들에게 문명을 가르친다. 우윳빛 비누로 세수하는 법과, 가슴을 시원하게 하는 코카콜라의 맛이며, 향수와 무지개색 과자와 드롭스와, 레이스 달린 잠옷과 고급 시계와 보석 반지를 포탄으로 곤죽이 되어버린 바라크 위에 쏟아낸다. 아시아인의 냄새 나는 식탁 위에 치즈가 올라가고 소녀들의 가랑이 속에서 빠져나간 콘돔이 아이들의 여린 손가락 위에서 춤춘다. 한번이라도 그 맛과 냄새와 감촉에 도취된 자는 결코 죽어서라도 잊을 수가 없다. 상품은 곧바로 생산자의 충복을 재생산해낸다. 아메리카의 재화에 손댄 자는 유에스 밀리터리의 낙인을 뇌리에 찍는다. 캔디와 초콜릿을 주워먹고 노래를 흥얼거리며 자라나는 아이들은 저들의 온정과 낙천주의를 신뢰한다. 시장의 왕성한 구매력과 흥청거리는 도시 경기와 골목에서의 열광과 도취는 전쟁의 열도에 비례한다. PX는 나무로 만든 말〔馬〕이다. 또한 아메리카의 가장 강력한 신형무기이다.

 기지촌의 조용한 밤은 마치 폐광이 되어버린 서부 시절의 금광 마을처럼 적막하게 깊어간다. 울긋불긋한 간판과 조잡한 붉은 전구며 노랗게 물들인 매춘부의 머리카락 또는 손톱에 바른 빨강, 검정, 은회색, 갈색 따위의 매니큐어 같은 기지촌의 모든 색깔은 아메리카와의 연줄이 끊기자마자 일시에 퇴색하기 시작한다. 가짜 축제가 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초콜릿과 드롭스의 포장지나 매끈하고 꿈 같은 냄새가 나는 비누, 그리고 알파벳과 점잖은 무늬며 색깔과 금박 은박으로 장식된 담배 또는 술병들 따위의 모든 PX 물건들은 그것을 사용하는 자들이 사라지자마자 그 환상적 위력을 잃고 고립된 사물로 전락한다. 기지촌의 아침은 그래서 언제나 백주에 드러난 무대장치처럼 황폐하다. GI 머니가 바뀐다는 소문이 떠돌면 술집 주인, 세탁소 아저씨, 포주 엄마 그리고 창부들, 구두닦이들은 모두 미쳐버린다. 온통 달러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GI들의 배신에 대하여 분개하고 마지막 날이 되면 드디어 세계에서 가장 위력있는 그림딱지를 의연하게 태워버린다. 불 속에서 그 기름진 종이는 순식간에 검게 변하고 오그라들면서 사라진다. 창부는 불을 들여다보면서 울지 않는다. 누구는 얼마 날리고 누구는 미리 알고 물건을 사두었다는 둥 누구는 군표로 침대 머리맡을 도배했다는 둥 하는 소문이 떠돌다가 다시 미군이 외출을 나온다. 모든 기지촌 사람들은 불 속으로 사라진 돈에 대해서는 금방 잊어버리고 여기에서의 생활과 사물들이 미군의 매개로 다시 생명을 되찾게 된 것에 안도한다. 미군의 주둔은 이런 마취된 안도감들과 굳게 연결되어 있다. 


 이것 말고도 읽는 도중 갑자기 말의 폭풍이 부는데, 갑작스러워서 몰입을 깰 것 같지만, 문장이 꽤 좋은 편이라 몰입하게 된다. 월남전. 아니, 미국이 개입돼 미국의 돈과 물자와 문화가 들어오는 전쟁은 전부 저런 모습이 아닐까? 저런 대목들을 한국 전쟁이나 이라크 전쟁 등에 빗대어봐도 꽤 들어맞는 구석이 많아 작가의 통찰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기 힘들 정도다. 어쩌면 미국의 전쟁 수행 방식이 항상 같았던 걸지도 모르지만….
 


보장된 재미


 그런데 이 소설이 자전적 소설임에도 지금도 읽히는 이유는 단순하다. 굉장히 재밌다. 작가의 체험을 담은 자전적 소설이라고 소개하는 대신 스릴러 소설이라고 소개해도 될 정도로 재밌다. 심지어 추리소설처럼 독자가 직접 다음에 일어날 징후를 미리 짐작해보도록 구성된 파트도 있다. 주요 인물들 전부가 치열하게 두뇌싸움을 벌인다.

 예리한 의식과 막힘없는 전개, 적절한 호흡을 갖춘 문장과 매력적인 인간 군상. 이 소설에서 가장 특출난 매력이 무엇이냐고 콕 짚어 말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전투에 가려진 전쟁의 참모습. 무기의 그늘을 이해하는 데에는 정말 이만한 소설이 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