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론의 돼지> 혹은 <필론과 돼지> 감상-소설

…… 필론이 한번은 배를 타고 여행을 했다. 배가 바다 한가운데서 큰 폭풍우를 만나자 사람들은 우왕좌왕, 배 안은 곧 수라장이 됐다. 울부짖는 사람, 기도하는 사람, 뗏목을 엮는 사람…… 필론은 현자(賢者)인 자기가 거기서 해야 할 일을 생각해 보았다. 도무지 마땅한 것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데 그 배 선창에는 돼지 한 마리가 사람들의 소동에는 아랑곳없이 편안하게 잠자고 있었다. 결국 필론이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돼지의 흉내를 내는 것뿐이었다.



이문열의 소설 <필론의 돼지(1980)>를 읽으려고 봤더니


2016년에 새로 단편집 <필론과 돼지>를 내면서 <필론과 돼지>로 바꾸었습니다.


소설 끝에서 '필론의 돼지' 제대병들과 자신의 처지를 '필론의 돼지' 우화를 인용하기 때문에, 필론의 돼지로 정했던 것인데


사실 바꿀 이유는 없어 보이지만, 제목을 비교해 살펴보면 또 확실히 의미가 다릅니다.


대학물 먹은 지식인이나 사리에 밝은 촌부나 결국은 가만히 있는 건 똑같다는 데에 진한 조소를 남기는 이 소설에


'필론의 돼지'라고 붙으면 이 또한 그저 우화에 불과합니다만,


'필론과 돼지'라고 했을 때는 저 서로 다른 인물을 중심에 둔 '이야기'가 되는 셈이지요.


사실 전 필론의 돼지도 참으로 우아하고 멋진 제목이라고 생각하지만, 제목을 바꾼 지금에야 비로소 독립적인 이야기가 된 것 같아 참 마음에 듭니다.




제목 하니까 괜히 떠오르는 것인데, 드라마 <모래시계(1995)> 제목에 관한 비하인드입니다.


출세를 추구하다 몰락한 것에 방점을 둔 '이카루스의 날개'라는 제목을 주장한 홍 의원과


권력의 유한성에 초점을 둔 '모래시계'를 주장한 작가.


저기서 설명하기로는 정치적인 이슈 때문에 바꾸었다고 하지만,


그런 거 없었어도 모래시계가 더 나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좀 더 핵심적인 화두를 건드리니까.


어쨌든 이 얘기는 작가와 당사자의 시각 차이가 뚜렷이 드러나서 참 좋아하는 비하인드 스토리입니다.


아무튼 제목이라는 것이 참 단순한 것 같으면서도 오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