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서, <자정의 픽션(2006)> 감상-소설


언젠가 추천 받아 읽게 됐던 소설인데, 너무나 인상 깊어 따로 메모해두었던 책입니다.


누군가 볼만한 소설 없느냐고 물을 때 입에서 반사적으로 나오는 소설 중 하나죠.


이 소설이 훌륭한 이유를 전부 대거나, 혹은 문학적인 의미 같은 걸 파악하기엔 지식이 모자란 상태이므로 생각나는 대로 적어두겠습니다.


저는 읽기 전에 줄거리까지 소개를 받고도 재미를 느꼈습니다만, 줄거리를 알면 재미가 반감돼서 못 읽겠다는 분들은 지금 보시는 화면을 끄고 바로 읽기를 추천합니다.


전자책으로 100페이지 정도여서 금방 읽습니다.



전체적으로 어투가 유쾌합니다. 90년대 혹은 2000년대 초반에 유행했던 환상문학들을 보신 분이라면 익숙하실 겁니다.


단편 하나하나가 색이 꽤 다른 편이지만, 어투는 유지됩니다.


그 단편 중 다섯 편만 골라서 설명 드리겠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이 단편집에서 제가 또 읽고 싶었던 소설이 딱 다섯 편이라 그렇습니다.





1. 논쟁의 기술


 내로라하는 교수 둘의 대화로, 말이 대화지 실은 빈정거림 배틀입니다. 그래서 이 소설의 주제는 지식인들의 허영과 승리에 대한 집착입니다. 사소한 대화에서도 한 마디를 안 지려고 바득바득 이를 갈고 빈정거림을 섞는 우리 현대인에게 알맞은 주제죠. 


 그리고 <논쟁의 기술>이라는 문학이 아니라 비문학에 있을 법한 제목과, 단락 별로 소제목을 두는 구성이 특징입니다. 이것은 시중에 나와있는 자기계발서를 패러디한 것입니다. 그런데 단락 이름이 '무시하기', '얄밉게 웃기', '상대가 모르는 예를 들기', '말허리 자르기' 등으로 광기가 서려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생각했죠. 이건, 나를 위한 소설이다.



 

 논쟁이란 이견이 있는 사실에 대해 상대와 겨루는 과정이 아니다. 역으로, 상대와 겨루기 위해 이견이 있는 부분을 모색하고 그걸 극대화시키는 과정이다. 그것이 바로 이성과 논리로 진행되는 대화의 여러 스타일 중에서 논쟁만이 가진 독특함이다. 예를 들어 토론을 할 때라면, 우리는 동료로 하여금 그가 가진 재능과 기억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그의 성과가 토론에 참여한 모두의 성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논쟁의 성과는 단 한 사람의 것이며, 다른 이는 오직 패배자로서만 기억된다. 그러므로 논쟁에서는 상대를 일부러 무시하고, 약 올리고, 극도로 불안하게 만듦으로써 실수를 이끌어내야 한다. 두달 전에 나는 은밀한 성적 메타포가 내포된 언어를 집중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슈퍼컴퓨터의 언어연산능력을 가진 한 여교수를 울린 적이 있다. 나는 그녀가 성도착자임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이다.




 차를 마시는 동안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제각기 자기에게 유리한 주제를 선정하기 위해 머리가 너무 바빴던 탓이다. 나는 곁눈질로, 손길이 자주 닿지 않았을 책꽂이의 바닥과 특히 맨 꼭대기 칸에 있는 도서 목록을 훑으며 현교수의 독서성향과 지식의 정도를 가늠했다. 우선 그는 고등기하학과 생태지리학, 언어철학, 응용통계학, 의상심리학, 비교종교학, 양자물리학에 조예가 깊어 보였다. 연금술을 포함한 광물발생학, 비교문학, 퍼스널암호학, 중세철학, 컴퓨터언어학, 도상학도 상당한 경지에 다다른 듯했는데, 반면에 특히 유기화학과 해상군사학에는 취약한 것 같았다. 전형적인 인문학자의 취향이었다. 그렇다면 우리의 논쟁은 평범하게, 공통의 전문 분야인 역사 쪽에서 전개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서 나는 고대 극동아시아를 전공한 학자로서, 현교수처럼 고대 중국사를 전공한 학자가 놓치기 쉬운 일명 변방 오랑캐들의 역사를 끄집어내는 건 어떨까 생각해 보았다. 얼핏 보아도 이만 권은 넘어 보이는 책들 중에 없는 주제를, 내가 지난 일 년 동안 강연한 적이 있는 주제를, 쉽게 말해 현교수는 잘 모르고 나는 잘 알고 있는 주제를 찾아내기 위해 애썼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논쟁거리가 떠올랐다가 사라지곤 했다. 일단 세 가지로 간추리고 나서, 그러니까 차를 더 달라며 빈 잔을 내밀고 난 후에는 각각의 주제들이 어떤 의미와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 보다 면밀히 분석해보았다. 좋은 논쟁의 주제는 오늘날 이견이 분분한 것이어야 하며, 그럼에도 하나의 유력한 가설이 다양한 증거와 검증, 유추 자료를 통해 대표 학설로서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어야 하며, 일회성 에피소드의 수준을 넘어 근접한 역사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어야 하며, 비전공자로서도 흥미를 가질 만한 것이어야 한다.




 주인공의 내면 독백 중 두 토막을 아무거나 잘라왔는데, 주인공은 시종일관 이런 식으로 승리하기 위해 짱구를 굴립니다. 먼저 간단하게 상대방을 떠보면서, 상대방의 패를 추리하면서 전략을 짜고, 그동안의 노하우를 총동원하여 싸우는 주인공의 모습이 참 매력적입니다. 그러면서도 소제목은 완벽하게 주인공의 수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환상소설이나 무협지를 쓰시는 분이라면 추천 드립니다. 전투 장면의 구성을 이 소설을 읽고 따라하시면 되거든요. 정말 모범적이에요.


 이 소설을 읽고 나면 이 한마디가 참으로 와닿게 됩니다.


 경쟁심이나 허영심이 없이 다만 고요하고 조용한 감정의 교류만이 있는 대화는 가장 행복한 대화이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안 읽었는 데도 와닿으신다면, 진심으로 위로를 드립니다.



2. 노란 육교


 어느 날, 갑자기 춘천 외곽에서 영혼이 지나는 길이 발견됐습니다. 죽은 영혼들은 환하게 웃으면서 자전거를 타고 그 길을 지나고, 가족들은 임종의 마지막 길을 배웅할 수 있었죠. 시에서는 사람들이 영혼들이 잘 마중할 수 있도록 노란 육교를 세워줬고요.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올 법한 감동적이고 따뜻한 장면들이 많이 보이지만, 소설은 측량기사가 기록에 없는 길이라고 한 번 가봤다가 죽는 걸로 시작합니다.


 여기서 끝이 아니라, 소문 듣고 가봤다가 죽는 탐험가들을 시작으로, 은닉 재산에 대한 유언을 미처 남기지 못하고 떠나는 시아버지의 영혼을 붙잡는 며느리, 길 주변으로 형성되는 상권, 구경꾼들을 배려해야 상권에 도움이 된다고 설치된 노란 육교, 그리고 노란 육교 주변으로는 구경꾼들과 상인들로 가득 차 넘치는 쓰레기 등.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교과서에 수록해달라고 청원을 올리고 싶은 심정입니다. 이런 건 어릴 때부터 배워야 해요.


 하나의 사건을 두고 연속적으로, 유기적으로 반응하는 소설 속 세계를 너무 잘 구성해두어서, 이 또한 지망생들에게 추천해드리고 싶은 명소설입니다. 소설을 쓰기 전에 한 번 읽으면 감이 잡히실 겁니다.

 

 


3. 물속의 아이


 어머니의 사랑을 갈구하기 위해 뭐든지 하는 아이의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보면 참 흔하고도 단순한 얘기 같지만, 이 아이는 아버지 또한 어머니의 사랑을 빼앗는 적으로 보는 상태이며, 사랑을 얻기 위한 수단이 꾀병. 그것도 간질발작입니다.


 아이의 욕심에 파국으로 치닫는 가정이 참 인상적입니다. 그리고 또한 반응이 참 현실적이죠.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이렇게 적나라하게 그려내는 작가를 보고 기겁해서 더 읽지 않으려 했습니다만, 이 다음에 이어지는 소설 때문에 계속 잡게 됐죠.





4. 「사랑손님과 어머니」의 음란성 연구 


 어쩌면 이 소설집에서 가장 유명한, 혹은 박형서를 유명하게 해준 소설일 겁니다.




왜냐하면 이 소설이 거의 모든 유머 사이트에 돌아다녔거든.


 보다시피 논문 형식의 소설입니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도 논리 구성이 그럴싸해서 굉장히 웃깁니다. 




 이 글에서 조윤하는 각각의 텍스트를 한 사회가 생산해내는 의사소통의 일종으로 간주하는 관점에서 출발하여 주요섭의 작품들을 ‘식민지의 목소리’4) 로 규정하였다.


주석

 4) 1964년에 출간된 조윤하의 『식민지 사회의 이성』 은 한국적 현실을 분석하는 두관점, 현상론적 잣대와 불가지론의 입장에 의해 각각 후설학파와 흄 학회의 열성적인 지지를 얻었다. 그러나 조윤하 자신은 1987년 『존재하지 않았던 근대』 를 통해 전향적 자세를 보임으로써 그들을 정신적으로 강간했다.





 그렇다면 달걀이란 무엇인지 먼저 구조와 성분 분석을 통해 알아보도록 하자. 달걀은 난백(흰자), 난황(노른자), 난각(껍질), 난각막(난각과 난백의 경계막), 기실(공기주머니), 알끈(노른자의 위치를 안정시키는 끈), 배아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보통 크기 달걀 한 개의 무게는 약 50g 정도이며 11) 이 안에 수분이 74.7%, 단백질이 12.3%, 지방이 11.2% 들어 있다. 


주석

 11) 소란은 44g 미만, 중란은 44~52g, 대란은 52~60g, 특란은 60~68g이고 68g을  초과하면 왕란이다. 성인의 불알은 한쪽이 평균 12g가량인데 17g 이상은 쇠불알, 22g 이상은 왕불알이라 한다.




 보다시피 논리 구성 뿐만이 아니라 주석 부분에서도 굉장히 광기가 서려있습니다. 대학 시절 논문이나 레포트를 써보신 분이라면 더 웃으실 수 있습니다.


 사실 학계 비판하는 것 치고는 굉장히 수위가 센 편인데, 과하게 비판했다는 소리는 못들은 걸로 압니다. 너무 웃겨서 그런 건지, 유명해져서 그런 건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5. 두유전쟁


 줄거리고 뭐고 설명하기 곤란합니다. 왜냐하면



 미합중국의 대통령은 주눅이 들어 있었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라고 변명을 해봐야 소용이 없었다. 입만 열었다 하면 사정없이 국방장관의 손찌검이 날아왔다. 그는 대통령 알기를 중증 정박아인 자기 아들처럼 알았다. 그 시간에 국방장관의 정박아 아들은 아버지에게 맞은 상처를 입으로 핥으며 벌거벗겨진 채로 다락에 갇혀 있었다. 상처를 입으로 할짝거리는 건 진실로 현명한 방법이다. 의학계의 최신 보고에 의하면, 인간의 침에는 통증을 완화시키고 상처를 아물게 하는 성분이 들어 있다고 한다.


 귀를 찢는 듯한 헬기 프로펠러의 굉음이 들려왔다. 그건 정말 귀를 찢는 듯한 소리였다. 그러다 진짜로 그의 귀를 찢어버렸다. 


 그는 총알과 포탄이 어지러이 날아다니는 중동 사막의 탱크 속, 정신없이 포탄을 날리는 부하 병사의 등 뒤에서 열정적으로 자위를 한 적이 있었다. 그건 정말 짜릿한 경험이었다. 다만 그 손은 조금 전까지도 열화우라늄탄을 만지던 손이었기 때문에, 그로부터 삼 년 후에 태어난 그의 아들은 죽을 때까지 똥과 된장도 구분하지 못했다.   방사능으로 인해 고통 받는 건 그의 아들뿐이 아니었다. 그에게 따귀를 맞은 미합중국 대통령 또한, 우리 국방장관님의 손찌검은 어찌 이리도 얼얼한 걸까 감탄하고 있었다. 그건 절대로 평범한 손찌검이 아니었다. 이미 대통령의 광대뼈에는 백혈구가 빠른 속도로 파괴되고 있었다.




 이런 문장으로 도배된 소설이라 줄거리를 파악하기 전에 이미 넋을 놓아버렸기 때문입니다.


 한국 구석에 있는 성범수라는 소년을 두고 미국 등 열강과 한국의 첩보원들이 벌이는 혈투가 중심인데, 문장 하나하나가 뭔가 설명하다 결국 삼천포로 빠집니다. 김진명 등의 작가로 친숙한 테크노 스릴러-테크노 스릴러 팬들 사이에선 의견이 분분하지만 아무튼-를 까는 소설입니다. 저도 콜오브듀티 같은 거 참 좋아하는데, 읽는 내내 왠지 뼈아픕니다.


 순수문학 작가가 장르문학을 심하게 깠지만, 다행히 별 논란은 없었습니다. 이 정도로 유쾌하면 그냥 넘어가나 봅니다. 저도 욕하기 전에 유쾌하게 말하는 법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개해드린 건 다섯 편이지만, 나머지도 꽤 재밌습니다.


 그리고 이 소설의 특기할 만한 점은 제목입니다. 일반적으로, 단편집은 그 단편 중 으뜸인, 혹은 작가가 제일 좋아하는 단편을 제목으로 삼는데, 이 책은 <자정의 픽션>이라는 소설집의 제목을 따로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작가가 이 소설집으로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따로 있다는 뜻입니다.


 소설집 끝에 평론가의 말로는 '소설이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이끌어내기 위함으로 보았습니다. 


 그런데 더 뒤에 있는 작가의 말은


 나는 현자(賢者)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 『자정의 픽션』 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내가 생각하는 ‘자정’ 이란 가라타니 고진이 그리워하는 ‘요란했던 근대’ 이후의 시간이다. 동시에 서사문학이라는 대가족 안에서 소설이 태동하던, 태아처럼 웅크린 채 자신의 미래에 대해 홀로 자문해보던 근대 이전의 저 먼 ‘새벽’ 을 의미하기도 한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자정’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얕은 꿈을 꾸거나 혹은 잠을 이루지 못해 고단하게 중얼거리는 시간이다. 어느 쪽이든, 아침은 바로 거기서 시작된다고 믿는다.


 이런 구절로 끝맺음 됩니다.

 

 이 구절을 읽고 든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모더니즘 문학과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에 대한 고민으로 느껴졌습니다.


 사실 무엇이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이냐에 대한 정의는 아직까지도 논의 중인 사항에 있습니다. 아니, 논의 내리기 이전에 우리가 진실로 모더니즘 이후의 세계인가라고 선언하기도 망설여지는 게 현실입니다. 그러니 결국, 우리는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사이에 있다고 보는 것이 차라리 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중간에 선, 자정에 있는 문학인들은 어떤 문학을 만들어야 하는가? 글쎄, 딱히 답이 안 나오는군요. 


 이도 저도 답을 내리지 못할 바에는, 그저 현실에 충실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이 소설은 문학을 모르는 사람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소설들로 구성돼있습니다. 어쩌면, 이도 저도 답을 못 내릴 바에는 일단 즐길 수 있는 걸 만드는 게 나을 수도요?


 저는 '자정의 픽션'의 의미를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니면 말고.








 그리고 이 책을 읽고 박형서에게 홀딱 반한 저는 제 뇌가 게임 채팅과 환타지 소설에 절여졌다는 사실을 잊은 채 작가의 다른 소설을 읽었고, 절망한 채 뛰쳐나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