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쏘가리(Looie) -1- 소설-전쟁터에 앉은 파리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자네는 간부가 우습나?"
 이미 불 꺼진 지 한참은 된 담배가 홀든의 치아 사이에서 오르내렸다.
 "아닙니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라이트 하사는 시계가 되었다. 30초 단위로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두 마디를 반복하는 인간 시계. 
 "자네가 기자에게 살랑거리면서, 우리 부대원을 위험에 빠뜨리는 동안, 대대본부에선 작전을, 구상 중이었네. 부대원들도 구하고, 적도 죽일 수 있는 완벽한 작전을."
 격앙된 감정을 애써 누르고 있다는 걸 보여주려는 듯, 억양과 속도를 조절해가며 말하는 솜씨에서 홀든의 연륜이 느껴졌다. 
 "장교를 향한 괜한 적대감이 있을 수도 있고. 혈기에 눈이 멀어 신중한 판단을 못 미더워할 수도 있다는 건 아주 잘 아네. 하지만, 내 이해와 자비심이 방종의 허락은 아닐세."
 "죄송합니다."
 "죄송이 아니라." 
 언성을 높인 홀든은 이내 호흡을 골랐다. 홀든의 허리를 숙여, 푹 숙인 하사의 얼굴을 보았다. 무표정. 단순한 무표정은 아니다. 꼬리 내린 개의 아우라가 느껴지는, 그런. 그걸 확인한 홀든은 이쯤 마무리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홀든은 허리를 꼿꼿이 펴고 헛기침했다.
 "나도 바쁘니 이쯤 하지. 그리고 항상 명심하게. 자네가 거역하는 대상은 눈앞의 간부가 아니라, 대대장님이라는 걸. 해산."
 라이트 하사는 몇 걸음 채 떼지도 않아, 인기척을 느꼈다. 교회 주방.
 "아." 로머 자신도 멋쩍어 웃고 말았다. "양고기 좀 챙기느라. 마침 잘 왔어요. 좀 도와주시겠어요?"
 로머도 엿들으려던 건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다. 어제부터 예상 못 한 일이 많았기 때문에 간부들 얘기 들으려고 식사에 동석했다. 양고기를 푸짐하게 먹게 됐는데, 먹다 보니 소대원들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래서 식사 끝나자마자 곧장 식당에 들러, 남은 고기를 챙기던 중이었는데……. 
 한숨. 라이트는 말없이 들어가 비닐에 고기 담는 걸 도왔다. 어색한 침묵. 이런 건 서로 견디기도 힘들다. 이럴 땐 아예 자리를 피하거나, 다른 얘기로 주의를 흩뜨려주는 게 좋았다. 
 "농가 식구들 보니까, 어제부터 양을 먹더라고요. 전부 먹을 기세로. 동네 사람한테도 막 나눠주는 걸 봤는데, 이상하게 무섭더라고요."
 로머는 라이트 하사가 이런 잡담에 화내지 않을 것을 알았다. 척 봐도 무안해서 던진 빈말에 와준 것이 그 신호였다. 정말 우울하고 예민해져서, 흔히 말하듯 건드리면 터지는 상태였다면, 처음부터 무시하고 지나갔을 것이다.
 "우릴 못 믿는 겁니다."
 말을 받았으니, 이제 적당히 주고받기만 잘하면 된다. 그럼 하사의 기분도 풀어질 것이다.
 "하긴, 아무리 정중하게 말한다지만, 총 든 덩치들이 군표만 내미는데. 그런 건 누구라도 못 믿어요."
 "홀든은 우리 부대를 잘 압니다. 부대원들이 어쩌다 오게 됐는 지도. 다섯 명이나 죽었어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는 건 그래서입니다."   
 "아."
 갑자기 이러니 당황스러운데. 
 "아니, 뭐. 징집된 이유야 대부분 똑같지 않나요? 빈민개병제라고 비꼬는 거 하도 들어서 외워버렸다고요."
 데멜의 징병법은 미국과는 달랐다. 연령은 18세에서 35세로 평범한 수준이지만, 직업이 있거나 대학과 대학원에 재학 중인 사람은 면제된다. 하지만 3개월 동안 직업이 없다면 바로 징집당한다. 설령 해고되어 구직 중이라 할지라도. 
 산업과 경제의 보호와 국가 안보를 모두 해결할 수 있는 훌륭한 법이라고는 하지만, 글쎄……. 로머의 눈엔 좋게 보이지 않았다. 약자를 총알받이로 내세우는 모양새라. 게다가 이미 부작용도 여기저기서 들리고…….
 어쨌든 데멜군의 대부분은 그런 무직자들이라고 보면 된다.
 "좀 다릅니다." 라이트가 말했다. "얘기 들어보면 알겠지만, 대부분 사회에선 유능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그런 사람들이면 깔볼 이유가 없잖아요."
 하사는 말을 하려다 말고, 깨달은 듯 입을 다물었다.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말하게 됐지만, 아무래도 말씀드리기는 곤란합니다."
 그럼 처음부터 말을 말던가.
 "생각해 보니, 먼저 얘기 드리면 선입견만 생길 겁니다. 제가 말을 잘하는 편도 아니고. 본인들 입으로 듣는 게 나을지도 모릅니다. 직접, 대화하면서."
 "그렇게 깊게 캘 생각은 없으니 염려 마세요."
 사실이었다. 원체 호기심 충만한 로머지만, 그렇다고 눈치 없이 이 사람 저 사람 들쑤시고 다니는 사람은 아니었다.
 "홀든처럼 필요 이상으로 의식하지만 않으면 됩니다."
 "그건 항상 조심합니다."
 로머는 고기를 세 겹으로 포장했다. 가면서 냄새 흘리는 것도 걱정됐고, 아무래도 무게가 있다 보니 한 겹으로는 불안했다. 다행히 비닐은 많았다.  
 


 "국경 대신 중립을 버린 뉴스. 편파뉴스 시간입니다."
 폭발로 뻥 뚫린 벙커에선 라디오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모습이 마치 산이 입을 벌리고 말하는 것 같았다.
 6중대 2소대 2분대원들은 모여 앉아 라디오를 듣고 있었다. 
 "안녕, 밖녕!(Hello, Bello!) DJ로사리오입니다. 포크와 나이프는 잠깐 내려놓으시길. 손을 써야 할 소식이 들어왔으니까요. 오늘 새벽, 우리 멋진 국군 장병 여러분들이 이겼습니다. 그것도 W5 전선에서!"
 "쉿, 모두 조용."
 검지를 입술에 올린 플로이드는 들떠서 몸부터 들썩거리고 있었다.
 "그 주인공은 용맹하고 또 용맹한 제4차량화보병사단! 우리 병사들이 못된 아폴라 놈들을 무찔렀습니다. 모두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저 머나먼 서쪽 땅까지 들리도록!"
 "우리 얘기야!"
 소리 지르면서 손뼉을 쳐대는 게, 무슨 복권 추첨이라도 하는 모양새였다. 방송에서 셀럽이 언급해주는데 싫어할 사람은 없긴 하다만, 플로이드는 좀 과했다. 오두방정 떠는 모습에서 광기가 느껴질 정도였으니. 플로이드는 자기 이름도 나올 거라며 주먹을 꼭 쥔 채 집중하고 있었다. 
 DJ로사리오라면 로머도 알고 있었다. 본명은 해리 로스. 데멜 최고의 인기 언론인이니, 모를 턱이 없었다. 데멜이 독립하기 전부터 활동하던 혁명스타. 다른 별명은 미스터 벨라로. 별명은 고속철에서 따왔는데, 말이 고속철처럼 빠르고 막힘없이 죽죽 뻗기 때문에 붙은 별명이다.
 표어가 뉴스치곤 좀 튀는데, 언론인도 사람인 이상 절대중립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아예 처음부터 시민 편에 선다는 의미라고. 
 "웬 거냐?"
 브룩스는 소총을 손질하고 있었다. 옆에 다섯 정은 쌓인 걸로 보아, 후임들 것도 닦아주고 있던 모양이었다.
 "양고기입니다. 기자분께서 갖고 오셨습니다."
 "꽤 하는데?" 
 유탄수 데릭이 로머와 하사가 안고 있던 봉투를 받아주었다. 비닐을 풀자, 고기향이 번짐과 동시에 분대원들이 전부 한자리에 모였다. 그 모습을 보니 챙겨오길 백번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술도 가져오지."
 로켓포 부사수 도미닉은 어느새 한 점 뜯고 있었다.
 "욕심부리지 마."
 브룩스는 손질하던 소총을 내려놓고 손을 닦았다. 
 "이 돼지들아, 또 처먹냐?" 플로이드였다. "딴데서 먹으면 안 돼? 나 뉴스 들어야 한단 말야."
 그러고 보니 다들 한 점이라도 먹으려고 움직이는데, 플로이드만은 움직이질 않았다.
 브룩스의 손가락이 밖을 가리켰다.
 "라디오 들고 나가."
 "내보낼 수 있으면 내보내 보쇼."
 그러더니 플로이드는 빈자리에 라디오를 안고 벌렁 누워버렸다. 그 모습에 벙커에 있던 8명 모두 웃고 말았다. 8명?
 "그런데 2분대뿐이네요? 나머지는 아직 자는 중인가요?"
 로머의 물음에 브룩스가 답했다. 
 "동쪽 산에 수색나갔어."
 "위력정찰이면 5중대만 가기로 했잖아요, 남쪽으로."
 새벽의 전투 이후, 부대는 뒷개울에 눌러앉았다. 전차 지나갈 길이야 다 파놓긴 했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다. 
 군 정보부에선 적군은 중화기도 없고, 사기도 낮아, 쾌속진격하여 일주일 안에 윈스랜드 주를 장악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 말과 달리, 적의 저항은 거셌다. 대전차화기도 있었고, 이틀 만에 벙커를 지어놓기도 했고, 질서 없이 도망가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버티면 버텼지. 
 사단 수색대는 이미 작전 시작하기도 전에 W1 전선으로 차출된 상황이었고, 결국 5중대가 전차 두 대와 함께 위력정찰에 나섰다.
 어쨌건 좋았다. 정찰이 끝나기 전까지는 일단 대기하기로 결정됐기 때문에, 이렇게 노닥거릴 수 있으니. 정작 병사들 과반은 오히려 언제 기습당할지 모른다며 불안해하고 있었지만.
 "아니, 그거 말고." 브룩스가 뼛조각을 뱉었다. "새벽에 봤잖아. 여기에 없던 벙커 이틀 만에 생긴 거. 그래서 동쪽에도 동굴이 하나 있다고 중대장이 정찰 보냈어. 우리만 여기 남기로 하고." 
 "덕분에 우리만 포식하지만."
 도미닉은 뼈까지 쪽쪽 빨아가며 먹었다. 브룩스는 그런 도미닉에게 눈으로 면박을 주었다. 쓸데없는 소리는. 
 "참, 그러고 보니 누가 찾던데." 
 브룩스가 뒤늦게 생각해내곤 로머를 보았다. 
 "저요?"
 "동데멜시보 기자면 너 아니냐? 그, 알렉스라는 사람이 찾더라고. 마을 입구에 있는 트럭에 있다고 전해달라던데."
 맞아. 만나기로 했다. 반드시 만나야 하는 사람이다. 
 "벌써 왔나요? 감사합니다. 그럼."
 "고기 잘 먹었다."
 로머는 손을 올려 보이고 곧장 달려 나갔다. 놓치면 안 되는 사람이니까.


 
 "한가할 거라고 들었는데, 바쁘신 모양이네요?"
 "아뇨. 밥 먹고 막 나오는 길입니다."
 하지만 숨을 가쁘게 몰아쉬는 것이, 누가 봐도 바쁜 일 급하게 마무리 짓고 나온 모양새였다. 
 '선배도 참. 여자면 여자라고 말해줄 일이지.'
 만나기로 한 알렉스는 여자였다. 여자인 줄 알았더라면 개울에서라도 씻고 나왔을 것이다. 
 부대원들과 마찬가지로, 로머의 모습은 처참했다. 머리에서 안 빤 인형 냄새가 나고, 얼굴과 귀 뒤에 쌓인 기름은 코를 찌르는 독한 냄새를 풍겼다. 잠도 모자라 눈도 시뻘겋고, 열린 모공엔 먼지로 검게 물든 건 물론이고. 
 "알렉스 무어에요. 유진 리소스 직원이고요. 애드한테 얘기는 들으셨죠?"
 "예. 그렇습니다."
 다는 못 들은 셈이지만. 알렉스는 윌킨슨의 부탁으로 동데멜시보의 전령을 맡았다. 로머가 찍은 자료들을 전달하는 것이 그녀의 부업이었다.
 사실, 처음에 로머는 이미 사단장에게 부대의 컴퓨터와 팩스를 언제든 써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기 때문에, 그걸로 기사도 쓰고 사진도 보내려고 했다. 하지만, 윌킨슨이 만류했다. 부대 통신망은 군 정보부에서 관리하기 때문에, 패킷이 감청당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면 사전에 보도지연이나 검열을 당할 수도 있고, 군 신문에서 로머의 기사와 사진을 가로챌 수 있게 된다고 했다.
 그 대책이 바로 알렉스였다. 유진 리소스는 이름은 재활용업체지만, 전장 정리도 맡은 기업이어서, 부대를 따라다니다시피 하니까. 
 직원인 알렉스는 마침 윌킨슨과 친분도 있고 해서 전령으로 간택된 것이다. 
 "그럼 부탁드립니다."
 "걱정 마세요."
 메모리카드를 교환한 로머는 가볍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감사합니다. 그럼 다음에 또."
 "잠시만요. 벌써 가시려고요?"
 로머는 어쩐지 쑥스러워져서 멋쩍게 웃었다.
 "기사로 쓸만한 얘기인지는 모르겠는데, 좀 신경 쓰이는 게 있어서요. 따로 알아보러 갑니다."
 "하지만 기자님은 여기서 좀 기다리셔야 할 텐데."
 "뭘요?"
 "보충 인원이요. 곧 올 거에요."
 "아."
 사람이 오는 걸 알았다면 기다리는 게 좋긴 하다. 그리고 오는 사람 중엔 2소대 소대장도 있을 것이다. 마중 나와주면 좋은 인상을 줄 수 있겠지.
 간단히 감사를 표하고 기다리기로 했다.
 "그런데 뭔가요? 그 조사한다는 게?"
 무어는 이미 귀와 입에 시동을 건 상태였다. 보아하니 동료들은 물건 인계받으러 대대장에게 간 모양이고, 그동안 혼자 기다려서 심심했던 모양이다.
 "혹시 시멘트에 대해서 좀 아시나요?"
 무어는 풋 웃었다.
 "그거 새로운 작업 멘트인가요?"
 "아뇨. 그럴 리가." 
 로머는 이틀 만에 벙커가 세워진 일을 말했다. 새벽 전투가 끝난 뒤, 대대장은 이장부터 찾았다. 협조는 명백한 이적행위라면서. 대대장은 데멜군에 대항해 벙커 은폐 공작에 가담했다고 생각했다. 
 이장은 극구 부인했고, 그건 마을 사람 누구를 붙들고 물어봐도 마찬가지였다. 이장은 대대장을 달래기 위해, 양을 파는 일은 절대 없을 거라던 목장 주인을 불렀다. 이장의 말에 목장 주인은 군표를 받았고, 대대장은 만족했는지 더 추궁하진 않았다.  
 로머는 버려진 시멘트 포대를 보고 그것이 지구제임을 알았다. 통조림이나 휴지 따위야 대부분 지구제지만, 지구제 시멘트는 여기서 처음 보는 것이었다. 그래서 시멘트 자체가 좀 특별한 녀석이어서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마을 사람들도 그 정체를 모른다고 하기에 결론을 내리지 못하던 차였다. 선배도 알아본다고는 했지만, 아직 연락은 없고.
 "그거 속경시멘트(Early strength cement) 같은데요?"
 "속, 뭐라고요?"
 "이름 그대로, 빨리 굳는 시멘트에요. 몇 시간 만에 굳는 제품도 있다고 들었어요. 근데 그 이상은 저도 몰라요."
 그게 사실이라면 마을 사람 도움 없이 적군 혼자서 지은 게 맞는 모양이다. 자세한 건 더 들어봐야 알겠지만.
 "그렇습니까. 감사합니다."
 "도움이 됐다니 기쁘네요. 나중에 더 도와드릴 일 있으면 말씀하세요." 
 말하는 사이, 멀리서 엔진소리가 들려왔다.




03)프롤로그 -2- 소설-전쟁터에 앉은 파리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로머는 사진기를 쥐고 곧장 달려갔다. 다들 같은 생각이었는지, 담배 피우며 쉬던 군인들도 곧장 일어났고, 장교들은 움직이는 대신 무전을 기다렸다. 달리는 로머의 귀에 스며드는 건 무전 소리와 대화뿐만이 아니었다. 폭음과 총성도 멈추지 않고 들렸다. 아무래도 생각보다 더 치열한 모양이었다. 북쪽 방향으로 난 길은 하나였기 때문에, 합류는 어렵지 않았다.  
 전투가 벌어진 곳은 마을 초입의 산길. 북서쪽으로 이어지는 길 말고도 북동쪽 동굴로 향하는 길이 있었다. 진입각이 높은 경사로였다.
 둘은 들것에 실려 가고 있었고, 셋은 경사면에 그대로 나동그라져 있었다. 몸뚱이 밑의 흙은 피를 함뿍 머금어 축축했다.  
 경사면에 거의 눕다시피 몸을 기대어 대기하는 부대원들. 익숙한 얼굴들이다. 6중대 2소대 사람들. 후위를 맡기로 해서 마음을 놓았는데,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상황을 보니 들어가고 싶긴 한데, 들어가지 못하는 모양이다. 
 경사면은 대강 보아 폭은 사람 스무 명 정도. 경사로 옆은 암벽. 우회로는 없었다. 경사면 한가운데를 따라 늘어진 시신들로 보아, 올라서자마자 당하는 구조인 것 같았다. 시신 중 한 구의 견장이 눈에 띄어 보니, 소대장이었다. 대니얼 포먼. 항상 솔선수범하는 사람이었다. 대원들을 대기시키고 먼저 올라가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투입 명령을 받고 온 3소대장은 분대장을 붙잡고 물었다. 
 "상황은?"
 "둔덕 너머에 기관총이 있습니다. 머리만 내밀어도 맞는 구조입니다."
 2소대 2분대장 윈스턴 라이트 하사. 그렇게 말은 하지만, 정작 자기도 경사로 맨 위 끄트머리에, 아슬아슬한 위치에 자리 잡고 있었다. 
 "수류탄도 이미 세 발 던져뒀습니다. 그래도 멀쩡히 쏘는 걸 봐선, 저 앞에 벙커가 있는 게 분명합니다."
 그 말에 3소대장 찰스 홀든은 코웃음 쳤다.
 "벙커는 무슨. 우리가 받은 지도는 이틀 전 기준으로 만들어진 최신 자료다. 저긴 빈 동굴이야. 네 말은, 놈들이 이틀 만에 벙커를 지었단 말인가?"
 "정말입니다."
 "시끄러." 홀든은 소총을 고쳐 쥐었다. "우리가 처리하겠다. 1분대. 중화기는 빠지고. 돌격조는 분대장 포함 다섯 명. 나랑 함께 돌격한다. 2분대는 2소대랑 자리 바꿔서 우리 엄호하고. 신호는 내가 내린다."
 2소대는 전부 밑으로 내려가 사주경계를 하고, 그 자리를 3소대 인원들이 차지했다. 교대할 때 기류가 그리 좋진 않았는데, 3소대원들의 시선은 2소대를 명백히 깔보는 눈빛이었다. 
 2소대의 별명은 파리소대다. 구더기가 큰 것에 불과한 파리. 짬 주워 먹는 거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파리. 그래서 호출부호도 파리(Mosca)였다.
 무시당하는 2소대의 모습에 로머도 기분이 언짢았다. 같이 다닌 지는 얼마 안 됐지만, 식사도 이동도 2소대와 같이 하기로 돼 있으니, 사실상 한 식구나 다름없었다.
 로머는 볼멘소리를 하는 2소대원들을 두고, 홀든 쪽으로 갔다. 로머의 사진기를 본 홀든의 입매가 하늘로 솟았다. 
 "눈치 한 번 빠르구만."
 그 말대로 눈치껏 자리 잡은 3소대원들을 찍어주었다. 사진기를 누른 그 순간, 경사로 너머에서 기관총이 발사되었다. 주황빛 예광탄 무리가 새벽하늘을 수놓았다.
 빛줄기는 하나. 즉, 저 앞의 기관총은 한 정. 홀든은 상병 이상 되는 대원들을 불러 수류탄을 던지게 했다. 연달아 들리는 폭음. 경사면에 기댄 사람들은 그 진동에 놀라 움찔거렸다. 하마터면 로머도 발밑의 진동에 놀라 미끄러질 뻔했다. 
 폭음이 그치자마자 홀든은 연막탄을 던졌다.
 "아까 얘기한 그대로 간다. 내가 신호하면 바로 시작한다. 알겠나?"
 병사들은 소리를 내는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머릿속의 생각은 같았다. 먹이를 노리는 자칼의 눈빛. 그런 만큼 행동에 빈틈은 없을 것이다.
 연막탄은 스스로 몸을 녹여 구름을 피워올렸다. 새벽빛으로 물들어 푸르스름한 연기는, 시간을 먹고 덩치를 불렸고, 어느새 둔덕 밑에서도 머리를 보일 정도가 되었다. 
 "모두 전진!"
 홀든의 고함에 군인들이 움직였다. 그 순간.
 총탄이 연막을 뚫고 나왔다. 고함을 들은 건 부대원만은 아닌 모양이었다. 보이지 않는 탓에 마구잡이로 쏘는 듯했지만, 둔덕 너머의 그 좁은 길은, 전부 기관총의 사정거리. 전부 살상구역이었다. 부대원들은 뒤늦게나마 방향을 바꾸려고 했지만.
 "어웁, 컥!"
 비명은 나오기도 전에, 폐에서 총탄과 함께 찢어발겨 졌다. 찢긴 피부는 장기를 지탱해주지 못했다. 단 수 초 만에 둔덕 너머는 정리됐다. 그 공간에서 숨을 뱉는 건 미처 타지 못한 연막탄과 달궈진 기관총뿐.
 "어쿠!"
 총성에 놀란 홀든은 돌격하기도 전에 미끄러지고 말았다. 경사로를 구르며 떨어진 그를, 밑에 있던 소대원들이 부축해주었다. 휘청거리긴 해도 일어서는 걸 보아, 어디 부러지거나 하진 않은 모양이었다. 
 엄호를 맡은 나머지 대원들은 머리를 푹 숙이고 있었다. 죽은 대원들의 모습이, 감긴 눈꺼풀 안에서도 잔상처럼 재생되었다.
 "거기 다 내려와." 홀든이었다. "다시 2소대랑 자리 바꿔. 보고하고, 작전 다시 세운다."
 그러자 3소대원은 전부 기다렸다는 듯 모두 내려왔다. 2소대원들 몇몇이 궁시렁거리는 걸, 라이트 하사를 비롯한 선임병들이 달래느라 고생이었다.
 "기자 양반은 거기 남을 참이오?"
 "예, 아무래도."
 더 볼 일 없다는 듯 홀든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로머는 문득 사진기를 바라보았다. 사진기 안에는 대원들의 멋진 모습이 들어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용맹한 모습으로, 누군가는 긴장한 모습으로, 누군가는 걱정하는 모습으로. 그렇지만 이제 와서…….
 로머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더 깊이 생각해봐야 변하는 건 없다.  
 "진짜 답이 없구만…." 
 라이트 하사였다. 어느새 로머의 옆에 2소대원들이 모여있었다
 "여긴 경사가 높아서 장갑차량은 못 올라옵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만 가봐야……."
 라이트는 카터 브룩스 상병과 논의 중이었다. 
 "맞아. 하지만, 빨리 해결봐야지. 여기서 부대가 묶여있다간, 작전 실패고 뭐고 우리부터 힘들어지게 돼."
 "당장 죽을걸요?" 브룩스의 말에 마빈 플로이드 상병이 껴들었다. "포먼도 이제 죽고 없잖아요. 본부 지시도 뻔해요. 다음 공격은 홀든 저 새끼 지시받고 우리가 돌격할 걸요? 그리고 그대로 뒈지고……."
 "입 조심해."
 브룩스의 꾸중에 플로이드의 째진 목소리도 줄어들었다. 브룩스 상병. 나이가 33으로, 병 계급 중에선 제일 나이가 많았다. 게다가 아폴라안전보장공사(Apolla Safety Guarantee Corp.) 출신이어서 전술에 관해서도 밝았다. 그래서 2소대원들이 많이 의지하는 편이었다. 그렇지만 그런 그도 지금은 난처하기만 했다.
 "벙커가 있는 건 확실해. 그런데, 거리부터 시작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이니……."
 "아까부터 그랬잖아요. 유탄부터 갈기자니까."
 "소용없어." 라이트가 답했다. "수류탄이 먹히지 않는다면, 유탄도 먹히지 않아."
 브룩스도 끄덕였다.
 "맞는 말이야. 게다가, 거리가 안 맞으면 터지지도 않아."
 결국 제자리걸음이었다. 떠드는 소리에도 기관총은 병사들이 아직 돌입할 생각이 없다는 걸 아는 건지, 조용했다. 홀든도 구태여 말리지 않고 본부의 연락이 올 때까지 담배를 피워도 좋다고 허락을 내렸다. 
 긴장은 어느새 풀어졌다. 그것과는 별개로, 문제의 실타래는 아직도 엉켜있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을까?'
 인간의 감이, 무언가 말하고 있었다. 뇌리엔 갖가지 생각과 감정이 얽혀 아무것도 못 하지만, 분명 방법이 있을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는 건 네 일이 아니야.' 
 로머에겐 여기에 나설 의무는 없다. 그래도 머리를 굴렸다. 그 순간 뇌리에서 다른 목소리가 속삭였다.
 '지켜보기만 하면 되는 거야.' 
 "아."
 그런 방법이. 로머는 사진기를 둔덕에 걸치고 재빠르게 셔터를 누르고 잡아끌었다. 섬광과 함께 기관총이 다시금 불을 뿜었다. 
 "뭐 하는 거야!"
 "아니, 잠시만요."
 브룩스의 호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로머는 사진기를 살펴보았다. 로머가 한 박자 빨랐다. 사진기는 손상이 없었다. 그리고 액정에서 방금 찍은 사진을 골랐다. 다행히 번짐 없이 찍혔다.
 '역시.'
 둔덕 너머엔 벙커가 있었다. 곧장 브룩스 상병에게 화면을 보여주었다. 
 "벙커가 있을 줄 알았습니다." 라이트가 말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튼튼해 보이는데?" 
 콘크리트 벙커는 산 밑에 움푹 들어간 상태로, 제일 안쪽에 기관총구가 있고, 그 옆에 철문이 있는 형태였다. 쇠 덮개로 열고 닫을 수 있는 총구. 콘크리트 벽은 가장 두꺼운 부분이 어림잡아 1m는 되는 듯했다. 
 브룩스는 턱 밑을 쓰다듬었다.
 "대충 거리를 보니 십오 미터는 넘어 보여. 좀 더 가까울 줄 알았는데." 
 플로이드가 자기 뒤의 병사를 가리켰다. 
 "그럼 이걸 쓰면 되겠네요."
 RPG-7. 휴대용 로켓포였다. 누군가 탄두에 상어 얼굴을 그려놓아 어울리지 않게 유쾌한 느낌이 들었다. 
 "전차도 잡는 놈이라고. 그럼 벙커도 뚫겠지."
 "글쎄." 브룩스는 치우라고 손짓하다, 이내 다시 손으로 로켓포를 쥔 대원을 불렀다.
"잠시만, 그거면 충분히 될 것 같아. 가방 좀 줘봐."
 로켓포 부사수가 탄두 가방을 내밀었다. 브룩스는 끝이 뭉툭한 탄두를 꺼내 조립하기 시작했다.
 "그거 플로이드한테 넘겨." 브룩스가 말했다. "벙커 가운데. 같은 곳에 맞춰야 해. 실수하면 안 돼."
 "아직 탄 많구만 뭐." 플로이드는 능글거리는 얼굴이었다. "뭐, 그래도 오사마리(Run out, 収まり)는 제 전문잉게, 걱정 붙들어 매쇼잉."
 로켓포를 받아든 플로이드는 로머를 불렀다. 쏘기 전에 사진을 보면서 위치를 가늠할 요량이었다. 
 "뭘 어떻게 하려는 건가요?"
 로머가 브룩스를 보았다.
 "이 로켓포에 대해서 알고 있나?"
 로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영화에서 본 게 전부라서……."
 "그럼 설명하지. 이 뾰족한 탄두가 대전차 탄두."
 손가락 끝엔 상어 머리 모양 탄두가 있었다. 마름모꼴에 가까운 실루엣.
 "성형작약탄이라는 건데, 대충 깊은 구멍을 판다고 생각하면 돼. 그리고 이건 열압력탄두."
 다음은 조립을 마친 탄두. 끝이 납작하고, 탄두 가운데는 뭉툭한 것이, 음료수 캔 같은 실루엣이었다. 
 "분말 상태의 연료를 사방으로 뿌린 다음 터지는 탄두. 예를 들어서 저런 벙커 같은, 밀폐된 공간을 제압하는 탄두라고 보면 돼. 모서리가 있어도 분말은 꺾이면서 퍼지지. 그, 연기처럼. T자 모양이면 T자 모양에 맞게, 그런 상태에서 터지면 모서리 끼고 숨거나 하는 것도 의미가 없지."
 브룩스는 이어서 대전차 탄두도 하나 더 조립했다.
 "하지만 그냥은 제압 못 해. 저렇게 꽉 막힌 벙커라면 분말 자체가 들어가지 않을 테니 의미가 없어. 그래서 구멍을 먼저 뚫을 필요가 있어."
 로머도 대충 알 것 같았다. 먼저 대전차 탄두로 구멍을 뚫는다. 뒤이어 발사된 열압력탄두는 분말을 벙커 내부 곳곳에 뿌린 뒤 폭발. 그러면 깔끔하게 제압된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두꺼워 보이던데, 뚫을 수 있을까요?"
 걱정 없다는 듯, 브룩스는 웃어 보였다.
 "기관총이 있는 쪽은 다른 부분에 비해 훨씬 얇으니까. 사람이 서서 기관총을 거치해둬야 하니까, 아무래도 미터 단위로 채울 순 없지."
 과연.  
 몇 분가량 보더니 감을 잡은 플로이드는 바로 로켓포를 둔덕에 걸쳐두고, 머리는 둔덕 아래로 낮추었다. 그걸 본 브룩스는 수류탄을 쥐었다.
 "내가 신호를 보내면 사격한다. 알았지?"
 소대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우리 멋대로 진행해도 괜찮겠습니까? 홀든이 가만히 있진 않을 텐데?"
 "미안하네. 욕받이 좀 부탁하지."
 라이트의 물음에 브룩스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라이트의 입에선 한숨만이 나왔다.
 "하……. 또 입니까? 알겠습니다." 
 이래서야 누가 분대장인지 모르겠다. 어찌 됐든 준비는 금방 끝났다. 플로이드가 좌우를 둘러보았다. 
 "다들 비켜."
 방아쇠를 당기자, 로켓포에서 폭음이 나는 동시에 둔덕 너머에서도 폭음이 들렸다.
큰 진동에 속이 울리는 것 같았다. 낚아채듯 내린 로켓포에 브룩스가 열압력탄두를 끼웠다. 그리고 다시 팔만 내밀고 발사.
 다시 폭음. 속이 울리는 것 같았다. 튀어나온 콘크리트 파편이 철모를 두드려댔다. 깡통과 북을 두드리는 듯한 소리가 울렸다. 무슨 단막극에서나 나올 법한 우스운 소리였다. 
 파편이 더 날아오지 않는 걸 확인한 브룩스는 곧장 수류탄을 던졌다. 다시 폭음과 진동. 하지만 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어헙!"
 적의 비명과 신음이 들린다는 점이다. 브룩스는 재빨리 소총을 들고 일어섰다.  
 "이제 쏴! 고개 들어도 돼!"
 총탄의 비가 부서진 벙커로 쏟아져 들어갔다. 잘 보이진 않아도 소리로 알 수 있다. 적이 저항도 못 하고 쓰러져가는 것을. 로머도 사진 찍는 것을 잊지 않았다. 오래 걸릴 것만 같았던 농성전은 2시간도 안 돼 막을 내렸다.


02)프롤로그 소설-전쟁터에 앉은 파리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눈앞의 광경을 어떻게 글로 옮겨야 할지 모르겠다. 고작 기자 3년 차여서가 아니다. 누구라도, 이 모습을 보면 말을 잃을 것이다. 진상을 알면 더더욱.
 로머의 눈앞에선 십여 대의 전차들이 새벽안개 속에서 밀밭을 끼고 길을 따라 빙글빙글, 회전목마처럼 돌기만 하고 있었다. 땅은 시간이 지날수록 패여가고, 엔진소리는 새와 양의 울음을 먹어 치우고, 매연은 빵가마에서 나오는 구수한 냄새까지 덮어버렸다. 주민들은 잠도 못 자고 나와 그 광경을 불안한 듯, 지켜보기만 하고 있었다. 그중 하나는 밭의 주인인지, 심은 지 얼마 안 됐다며 안절부절못했다.
 부대원들도 어처구니없기는 매한가지였는지, 그 풍경을 두고 저마다 다른 목소리로 떠들어댔다.
 초안을 대강 적은 로머는 전화기를 들었다. 액정이 넓은 스마트폰이어서 빛이 많이 나기는 하지만, 등화관제 지시가 떨어지지 않아 담배 불빛이 반딧불이처럼 피어올라, 마을 곳곳을 차지하는 판이니 상관없을 터였다.
 "녹음 켜뒀다. 천천히 말해."
 편집기자 애덤 윌킨슨. 로머의 담당이자 맞선임이다. 
 느릿한 목소리. 짜증은 한 올도 섞이지 않은 그 말투에, 로머는 내심 감사를 느꼈다. 이미 얘기가 돼 있다지만, 새벽잠을 깨웠는데도 그런 말씨였으니…….
 로머는 눈앞에 보이는 전차떼부터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 광경 자체는 글로 적자면 참 간단하지만, 전후 사정과 함께 적자니 참으로 난감한 것이었다.
 이 마을은 일명 뒷개울(Backwater)로 불리는 신망리(New hope village, 新望里)로, W5 전선의 시작이자 첫 목표인 지역이다. 
 해발고도 800m가 넘는 산들로 둘러싸인 험준한 산악지역인데, 진입하려면 협곡으로 들어와야 할뿐더러, 도로는 포장도 안 된 데다 옆으로 빽빽한 숲까지 있어 좁았다. 그렇기에 부대의 모든 차량은 위험을 알면서도 한 줄로 줄지어 들어와야 했다. 게다가 공간 문제로 이렇게 큰 차량이 이동할 땐 길목이 꽉 막혀 앞 차량이 멈추면 뒤는 돌아갈 공간도 없어 꼼짝없이 갇히게 된다. 
 이런 지형을 본 제4차량화보병사단장은 공병대부터 투입해 길목을 넓히며 나아가자고 제안했으나, 군단장의 지시로 3월 1일 어제부터 전진하기로 했다.
 아니나 다를까, 우려대로 선두의 전차가 휴대용 로켓포를 맞고 불타버렸고, 길목은 막혔다. 두 개 소대는 도로 옆 숲으로 들어가 싸우면서 전진하고, 나머지는 빗발치는 총탄 속에서 직접 나무를 베고 폭약을 터뜨리고, 전차가 전차를 밀어 치우는 대공사를 진행했다. 그나마 사상자는 전차병 셋이 전부였지만, 낭비한 시간은 11시간. 
 그런 고생 끝에 마을까지 왔다. 그나마 마을에서의 전투는 적군이 공용화기가 기관총뿐인 부대 40명이 전부여서, 전차가 있는 4사단이 사상자 없이 끝냈다.
 문제는 그다음부터. 마을 남쪽에 있는 개울을 건너기 위해 전차가 움직였으나, 하필 개울의 길이와 각도가 참으로 절묘하게도 폭 3.5m, 깊이 2.5m에 진입각 60도. 그야말로 정석적인 대전차호의 요건을 갖추었기에, 전차는 우렁찬 소리와 함께 개울에 푹 박혀버리고 말았다.
 마을 동쪽에 개울을 건너는 다리가 있긴 했지만, 통나무를 얼기설기 엮어 만든 것이라, 하중이 시원찮았다. 그래도 트럭까지는 건널 수가 있었기 때문에 트럭은 모두 건넜지만, 문제는 전차였다.
 아무리 봐도 30톤이 넘는 쇳덩이가 건널 수 있는 다리가 아니었고, 그걸 굳이 시험해보려는 사람도 없었다.
 결국 병사들이 도랑을 파 전차가 건널 수 있는 각도로 만드는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와중에 2대대 6중대장은 의견을 냈다. 다시 기습을 받는다면 전차가 1순위 목표가 될 게 분명하니, 대기하는 동안 전차는 계속 움직이게 하자는 이야기였다. 전차가 움직이면 조준을 하기 힘들어지니, 적이 쏘지 못한다는 논리였다. 대대장은 좋은 생각이라며 흔쾌히 받아들였고, 그 결과가 바로 저 광경이다. 회전전차(Tank-go-round). 
 그래서 제목도 '전차 퍼레이드: W5 전선에서의 첫 승리'로 붙였다. 윌킨슨은 풋 하고 웃었다. 
 "제목 너무한 거 아니냐."
 사실, 로머는 제목 짓는 감각이 떨어지는 편이었다. 지구에 있을 적에도 제목 가지고는 그다지 좋은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까 선배님이 있는 거죠."
 "짜식……." 
 목소리 톤으로 보아 이제 끊을 참인 모양이었다. 윌킨슨은 통화를 끝내기 전, 전부터 으레 하던 충고를 덧붙였다.
 "너는 기자라는 걸 명심해라. 문제를 해결하는 건 네 일이 아니야. 지켜보기만 하면 되는 거야. 목숨 보전과 보고가 최우선이다. 거기서 비겁한 놈 소리를 듣더라도 그래야 해. 그게 네 일이고 의무니까. 알겠지?"
 "염려 마세요."
 통화가 끝나자마자 곧장 사진기부터 들었다. 어느 언론사가 그렇듯이, 동데멜시보(The East Demel Times)도 취재기자에게 요구하는 건 사진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사진이 곧 돈이니까. 
 아직도 전차는 돌고 있었다. 그런데 로머가 보기엔 움직인다고 안 맞을 것 같진 않았다. 2미터라는 간격이 있긴 했지만, 로켓포에겐 그리 긴 간격이 아닌 듯 보였다. 거기에 전차들이 한 군데만 계속 도는 데다, 열 대가 넘었기 때문에 원하는 부위는 아니어도, 전차 자체를 맞추는 건 어렵지 않아 보였다.
 어쨌건 그것은 군인의 일. 로머는 로머의 일을 해야 했다. 새벽안개 속에서 전조등을 켜고 빙빙 도는 전차의 모습은 나름 멋있지만, 신문에 실릴 걸 생각해야 한다. 윤곽이 보이긴 하지만, 어두워서 윤곽만 보이는 정도이기 때문에 그대로 찍는 건 그리 좋지 않은 선택이다. 
 화각은 60도. 우선 3대 정도 잡히게 두고 셔터 세 번.
 세 번 번쩍임과 동시에, 누군가 흙을 차며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로머가 돌아보자, 흙 얼룩 한 점 없는, 깨끗한 군복을 입은 백인 사내가 있었다. 제럴드 랜달 중위. 6중대 정훈장교. 정훈과장이 오지 않고 그가 온 것은 로머가 6중대 2소대에 있기로 한 탓이리라. 
 "무슨 일이시죠?"
 뻔했다. 전차들을 찍지 말라는 것이지. 아무래도 상황이 그러하니, 숨기고 싶은 건 당연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로머는 알면서도 태연하게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물었다. 변명을 준비하려면 시간이 필요했으니까. 하지만 랜달은 달랐다.
 "저기, 다른 걸 찍으시는 건 어떻습니까? 더 좋은 사진이 나올 텐데."
 "아, 그렇습니까?"
 준비하던 변명을 도로 삼켰다. 그러고 보면 랜달은 비교적 융통성이 있는 편이어서, 대부분의 장교처럼 강압적으로 나오거나, 무조건 막지는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로머가 민간인이라는 사실을 다른 장교보다 의식하는 편이었다.  
 로머는 북쪽을 보았다. 전장 정리를 하는 군인들. 죽은 군인들 무기와 탄약을 추려내고, 군복을 뒤져 유품을 한군데에 모은다. 군복을 벗기는 대신 인식표를 떼어 수레에 하나하나 실었다. 수레가 향하는 곳은 마을 북쪽 어귀에 있는 공동묘지였다. 마침 묘지가 있으니 여기다 묻으려는 거겠지.
 "거기 말고."
 정훈장교가 가리킨 쪽은 문제가 된 개울 남쪽이었는데, 야전삽을 쉴 새 없이 놀리는 옆에서 군인들이 개울에 들어가 경계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참호 속에서 총을 겨누는 모양새가 영화 속 한 장면이 떠오를 정도로 멋졌다. 포신이 하늘로 꺾인 채 빠진 전차는 빼야 군에선 좋아할 것 같지만, 그것까지 넣어도 괜찮은 그림이 나올 것 같았다. 
 "괜찮네요. 보는 눈이 있으시네."
 "별말씀을."
 로머가 순순히 따르자, 정훈장교도 군말 없이 물러났다. 하지만 눈은 로머에게서 떼질 않았다. 엉뚱한 걸 찍지 말라는 게지.
 전차도 전장정리도 구미가 당기는 소재였지만, 아무래도 그냥 찍기엔 눈치가 보이니 일단 따르기로 했다. 후딱 찍고 나서 미처 못 찍은 것도 마저 찍을 생각이다.
 대충 보니 개울 밖에서 찍어도 될 것 같았다. 아니, 개울 안에서도 몇 장 찍어야겠다. 그 왜 있잖은가. 월남전 당시 참호 속에 몸을 묻은 군인들의 사진. 좁고 정적이지만 현장감은 뛰어나다. 로머도 이번엔 그런 사진을 찍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화각은 55도로 두고. 서서 세 번. 자세 낮추고 세 번. 
 '아뿔싸.'
 순간 번쩍이는 섬광에 놀란 군인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전부 로머를 보았다. 
 "그냥 사진 찍는 거에요. 사진, 사진. 죄송합니다."
 뒤늦게 쏟아지는 시선에 놀라 급히 사과했지만, 따가운 시선은 거두어지질 않았다. 잘 보니 몇 명은 총구까지 겨누고 있었다. 자신을 똑바로 향한 총구. 그 좁은 심연을 보니 모골이 송연해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로머는 플래시 기능을 끄진 않았다. 
 아니, 실은 끄지 못하는 것이다. 사진기는 아폴라 행성에 오자마자 산 캐논 EOS 5D mark II. 성능은 좋았지만, 사용법을 몰랐다. 설명서가 있긴 했지만, 지금 읽기엔 너무 어둡기도 했고. 
 일단 당장 전투도 없으니, 지금은 이대로 찍고 날이 밝으면 천천히 볼 생각이었다.
 그때였다.
 도도도독. 낡은 북을 치는 것 같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기관총 소리다. 방향은 북쪽. 소리를 대강 들으니 타고 왔던 산길 쪽이었다. 로머는 바로 움직이지 않았다. 사실, 좀 전에도 경계하던 군인들이 졸다가 총을 잘못 만져 소동이 일어났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가봐야 의미가 없다. 그래서 다시 개울을 찍으려고 들어간 순간.
 도도도독. 따닥. 따닥. 따다닥. 소총 소리도 함께 들렸다. 
 전투다!



01)시놉시스 및 머리말 소설-전쟁터에 앉은 파리

시놉시스


 빚을 갚기 위해 우주 전쟁 취재에 뛰어들게 된 지구 출신 기자 데이비드 로머. 포화의 중심으로 뛰어든 그의 기자로서의 임무는 전장에서만 볼 수 있는 이야기를 가져오는 것. 

 자원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특종을 찾아야 한다. 군 소속 언론병들보다 신속하면서 정확하고, 차별화된 이야기를 찾아야만 한다.

 로머와 함께하게 된 사람들은 부대의 골칫거리만 모아둔 파리소대와 명예욕이 앞서는 신참 소대장 올리버 블룸. 그런 와중에 부대는 작전 첫날부터 삐걱대기 시작한다.

 로머의 또 다른 목표는 자신의 누명을 벗겨줄 단서를 찾는 것이지만, 당장 군과 함께 진군하는 처지. 조사는커녕 목숨을 보전하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 체념한 로머는 군과 함께 진군하던 중, 사건의 실마리를 찾게 되는데…….


 자신의 실수로 무너진 사람들이 다시 일어서기 위해 나아가는, 꿈과 희망의 이야기.

 


제작방향


희망으로 가득한 소설

 세상으로 인해 버림받은 사람들, 찰나의 실수로 무너진 사람들이 같은 위기 속에서 뭉치고 싸우는 이야기.


초보자도 읽기 좋은 전쟁 소설

 전쟁의 A부터 Z까지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소설. 단순히 사전적인 자료를 늘어놓는 방식이 아닌, 사례와 사건 중심으로 설명되는 군사 지식이 전쟁 소설 입문서로 적절한 구성.


추리를 볼 수 있는 전쟁 소설

 전장은 언제나 예측불허. 제한된 정보와 모자란 시간 속에서 알맞은 해결을 강구해야 한다. 아군의 인물관계가 변수가 되기도 하고, 의외의 인물이 작전 해결의 단서가 될 수도 있다.


사람 냄새 나는 소설

 매캐한 화약 연기와 피내음으로 가득한 전장. 전투가 끝나고 진군하는 군인들 뒤엔, 사람이 있다. 영웅의 삶만큼 화려하진 않지만, 똑같이 소중한 삶의 모습들을 조명한다.


이국의 정취를 잘 살린 번역

 우주라는 배경에 맞게 등장하는 다채로운 국적의 인물들. 그들을 한데 엮어주는 번역. 적절한 번역에 무릎을 탁 치는 소소한 즐거움.



머리말


 작가에게 제일 괴로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아름다운 문장을 쓰지 못하는 것? 궁둥짝 붙이고 최대한 오래 앉아있는 것? 결과물에 쏟아지는 욕설? 마감을 준수하는 것? 자신과는 전혀 딴판인 인물의 심리를 묘사하는 것? 그것도 아니면 창작 그 자체?  

 나의 경우는 무언가 전하고 싶어 글을 쓰면서도, 정작 나만의 이야기가 없어 글을 쓸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겉보기엔 어쨌건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으니 해결된 것 같지만, 이 소설은 지금은 죽고 없는, 외국인 친구에게서 물려받은 글이다. 

 처음엔 친구의 글을 내용을 바꾸지 않고 번역해 공개하려고 했으나, 정작 공책을 펼쳐 들고 천천히 번역하면서 느낀 건, 역시, 나는 그를 전혀 모르겠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그대로 쓸 수가 없었다. 처음부터 고민부터 달랐으니까.

 친구가 글을 준비하면서 고민한 건 어떻게 해야 문자로, 실재하지 않는 가상의 것을 실재하는 것처럼 느낄 수 있게 하는가였고, 내 고민은 어떻게 해야 파리 같은, 무가치하다고 여겨지는 인간에게 존엄성을 부여해줄 수 있을 것인가였다.

 그런 고민의 차이는 제목에서부터 드러난다. 원래 이 소설에 친구가 붙였던 이름은 아폴라 연대기: 신참 기자 성공기였다. 보다시피 나는 전쟁터에 앉은 파리라고 지었고. 

 그러고 보면, 파리는 인간의 영감을 건드리는 구석이 있는 모양이다. 도시 파리(Paris)가 아니라 곤충 파리(fly). 심리학에서도 벽에 붙은 파리, 다큐멘터리 제작 기법에서도 벽에 붙은 파리, 유명한 사진작가 엘리엇 어윗의 말에서도 벽에 붙은 파리, 조각가 함진이나 파리를 소재로 한 작품들….  

 그래서 파리를 고르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아직도 나는 답을 모른다. 통찰력 있는 작가들은 글로써 답을 주었겠지만, 불행하게도, 그런 능력이 되지 않았다. 나도, 내 친구도.

 결국, 그렇기 때문에 답을 주는 글이 아니라 질문을 하는 글이 되어버렸다.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소설이란 기본적으로 대답의 양식이 아니라 질문의 양식이다. 

 나와 친구가 남긴 고민이 누군가에게도 가치 있는 고민이 되기를. 베넹헬리의 후손을 자칭하던 그에게 늦게나마 위로가 되기를. 그저 망상을 풀어놓은 것으로 끝나지 않기를. 



감정 대리인과 카카오프렌즈, 그리고 이모티콘 감상-도서


이 책에서 감정 대리인이라는 키워드를 설명해주는데


말 그대로 나의 감정을 대신해 표현해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 혼자 산다(2013)>나 <미운 우리 새끼(2016)> 같은 예능에서 관찰 당하는 주연들보다도 보면서 반응해주는 패널들이 인기를 끄는 경향이 강한데,


패널들의 반응이 시청자 자신이 느끼는 감정과 흡사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나의 감정을 대신해 표현해주는 것이다.


감스트 같은 중계 유튜버의 성공도 마찬가지이다. 


나의 감정을 대신 표현해주는 사람이니, 다른 인물들보다도 애착이 가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이 감정 대리인 중에서 좀 다른 양상을 보이는 것이 있다.








카카오프렌즈나 라인프렌즈 같은 이모티콘 캐릭터가 바로 그것이다.


이모티콘 캐릭터는 각양각색의 감정을 표현하는데


이용자 또한 목적에 맞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때 사용한다.


우리는 이 친구들을 빼놓고 메신저를 사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이 이용하고 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기존의 마스코트 캐릭터나 팬시 캐릭터와 다를 게 없다.


하지만 자신의 감정을 대신 표현해주는 캐릭터이다 보니, 어느새 사람들은 보통의 캐릭터와는 비교도 안 되는 애정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한 욕구는 소유욕으로도 이어지는데, 이는 단순한 물욕이 아니라, 자신의 친구를 곁에 두고 싶다는 욕구에 가깝다.









그런데 이 가능성을 몇 사람만 아는 건 아니었다.


수 많은 인물들이 자신들의 얼굴을 내건 이모티콘을 만들었다.


이는 정치인도 예외가 아니었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정치인 이모티콘이 무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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