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째서 앵커가 공주보다 강하게 나올까? 감상-애니메이션

미국 애니메이션 <해즈빈 호텔(2019)>에 등장하는 '666뉴스'의 앵커 킬조이.


그런데 공주뿐 만이 아니라, 만나는 사람마다 박하게 구는 험악한 인물로 등장하죠.


주변에서 제지하지도 않고요.


왜 이런 걸까요? 그렇게 독하게 굴지 않아도 될 텐데 말입니다. 


공주나 주변 사람들에게 얽힌 다른 이유라도 있는 걸까요?













출처: 커리어캐스트



그전에 먼저 미국의 언론인 대우부터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미국에선 언론인이나 방송인 대우가 정말 형편없습니다.


업무 환경도 나쁘고, 스트레스도 심하고, 대우도 박하고, 봉급도 적죠.....













그러니, 모든 것이 거꾸로 돌아가는 지옥에서는


반대로 앵커 같은 방송인이 제일 끗발 있는 직업인 셈입니다.





한편, 북한에서는 언론인은 배급이나 주택 등에서 우선 순위를 점하는 좋은 직종입니다.


당연히 대우도 다르고요. 애초에 출신 성분부터가 좋아야 될 수 있는 금수저 직업군이니 당연한 것 같기도 합니다.


요즘엔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운전수나, 수출입업자 등에 밀리기는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인기 있는 직종이랍니다.







해즈빈 호텔 처음 봤는데, 참 재밌더라고요. 저예산 애니메이션이라 그런지, 프레임처리나 음향이 조금 부족하긴 하지만, 그림과 이야기가 상당히 독특한 게 매력이었어요.


더 나왔으면 좋겠네요. 제작진의 건승을 빕니다.


문예창작학과 필수 도서 3종 잡담


문예창작학과 학생이라면 안 읽은 사람은 있어도 안 산 사람은 없다는 책 3종.

왜 책은 노래를 들려줄 수 없을까? 감상-소설


또 다시 꺼내는 <아연 소년들(2017)> 이야기.




책에 나오는 노래 하니 생각나는 것인데, 저도 책에 나오는 노래가 궁금해서 찾아봤거든요.








비행기 안에서 울었어요. 계속 울음이 나오더라고요. 어떻게 도망쳐나온 삶인데,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삶인데, 아프간에 똑같은 삶이 기다리고 있다니요. 휴게지에는 보드카가 물처럼 넘쳐났어요. 아마 이 노래 아실 거예요. “그리고 우리는 우주선 발사장의 풀밭을 꿈에서 봤어요…… 파랗고 파란 풀밭을……” 꼭 우주로 날아가는 것만 같았어요……












이 부분에서 나오는 노래가 무얼까 궁금해서 찾아봤는데, 당시 유행가였다는군요.




정말 꿈을 꾸게 하는 듯한 멜로디가 너무 인상 깊어 찾아봤는데, 메투살렘(Methusalem)의 타임머신(Time machine)이라는 독일곡이 유행할 때, 그걸 이기기 위해 부던히 노력한 끝에 이 곡이 탄생했다는 뒷이야기가 있습니다.








저는 두 곡 모두 좋아합니다.




아무튼 책은 노래를 들려줄 수 없다는 점이 참 아쉽습니다. 하이퍼링크와 전자책의 시대가 도래했음에도 그렇다는 점에서 더욱요.


작품과 작가의 분리, 어떻게 해야 하나? 감상-소설


전 <레디메이드 인생(1934)>을 참 좋아합니다. 문장 곳곳에서 엿볼 수 있는 주인공의 구질구질함을 잘 써두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80년이 지난 오늘에도 충분히 통용될 수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소설을 좋아한다고 말하기는 참으로 오랜만입니다.


왜냐하면 좋아한다고 밝히자마자 친일파 소설을 왜 좋아하느냐고 핀잔을 들었거든.


그렇게 절망하다 수업을 들은 적이 있는데, 평론 이야기를 하다가 교수님께서 서정주의 시를 한 수 읊으시면서 이야기를 하시더군요.




자화상

-서정주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

갑오년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할아버지의 숱 많은

머리털과 그 커다란 눈이 나를 닮았다 한다.

 

스물 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八割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 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罪人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天痴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지 않으련다.

 

찬란히 틔어 오는 언 아침에도

이마 위에 얹힌 의 이슬에는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


이 시를 두고, 저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지 않으련다'라는 구절을 두고 서정주는 친일행위에 대한 반성을 안 하는 사람으로 두는데 참 잘못된 것이다.


그 사람이 매국행위에 반성을 했나 여부를 떠나서, 저 시로 그의 반성을 논한 것은 참 바보같은 짓이다.


왜냐하면 저 시는 친일하기 이전에 쓴 시거든.


그리고 분명 문학적 업적이 있는 사람을 두고 기념관 철거하라 뭐다 하는데


그게 매국행위를 기리기 위해서인가? 천만에. 그 양반의 문학적 업적이 있으니까 놓고 그런 거지.


작가와 작품을 무조건 연관지어서 설명하려고 하다 보니, 거기에 함몰돼서 그런 바보 같은 짓도 하는 거다. 알아보지도 않고.


너희는 작품과 작가를 분리해서 볼 줄 알아야 한다. 칼럼이니 뭐니 쓸 때 그게 편리하긴 하겠지마는. 




정확히는 기억 안 나지만 대충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구조주의적 입장에서 보라고 항상 강조하셨는데, 이거 솔직히 능력에 부쳐서 안 되겠다. 학술적인 게 아니라 그저 재미난 것만 찾아 읽었는데 이게 될리가.


그런데. 작가의 기억이 많이 반영될 수 밖에 없는 것이 문학, 아니 모든 예술이 그렇잖은가? 어떻게 완전히 떼놓는단 말인가.


그래도 이것저것 읽어가다 보니, 분명 선은 있는 것 같았다.


작가의 생애와 연관짓다 보면, 분명 작품은 고정된 색채를 가질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 작품의 배경을 알면 결국 한 가지로 귀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큐브릭의 영화로 유명한 <시계태엽 오렌지(1962)>.


인간의 폭력성은 어떻게 통제해야 하는가? 아니, 통제하는 것이 마땅한가? 정당한 폭력은 과연 있는 것인가?


폭력에 관한 화두를 수 없이 남기는 유명한 작품이다.


그런데 작가는 아내가 미군 병사들에게 구타를 당해 유산한 기억에 의거해 썼다고 밝혔다.


이 비화를 알게 되는 순간 이 작품의 주제는 단 한 가지로 귀결된다.


폭력범들은 전부 태생적인 범죄자들이며, 이 본성은 절대 고쳐질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철저히 통제받고 벌해져야 한다.


그러니 작가와 작품을 연관지어 설명하는 것도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너무 분리해서 생각하면 그건 그거대로 문제이긴 하다.


자기 주장을 설명하기 위해 해설에 작가 생애를 끌어들이지 말 것. 어디까지나 작품의 이해를 좀 더 풍부하게 하기 위한 선에서 끝낼 것.


이런 것만 지키면 되지 않을까? 싶긴 하지만,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필론의 돼지> 혹은 <필론과 돼지> 감상-소설

…… 필론이 한번은 배를 타고 여행을 했다. 배가 바다 한가운데서 큰 폭풍우를 만나자 사람들은 우왕좌왕, 배 안은 곧 수라장이 됐다. 울부짖는 사람, 기도하는 사람, 뗏목을 엮는 사람…… 필론은 현자(賢者)인 자기가 거기서 해야 할 일을 생각해 보았다. 도무지 마땅한 것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데 그 배 선창에는 돼지 한 마리가 사람들의 소동에는 아랑곳없이 편안하게 잠자고 있었다. 결국 필론이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돼지의 흉내를 내는 것뿐이었다.



이문열의 소설 <필론의 돼지(1980)>를 읽으려고 봤더니


2016년에 새로 단편집 <필론과 돼지>를 내면서 <필론과 돼지>로 바꾸었습니다.


소설 끝에서 '필론의 돼지' 제대병들과 자신의 처지를 '필론의 돼지' 우화를 인용하기 때문에, 필론의 돼지로 정했던 것인데


사실 바꿀 이유는 없어 보이지만, 제목을 비교해 살펴보면 또 확실히 의미가 다릅니다.


대학물 먹은 지식인이나 사리에 밝은 촌부나 결국은 가만히 있는 건 똑같다는 데에 진한 조소를 남기는 이 소설에


'필론의 돼지'라고 붙으면 이 또한 그저 우화에 불과합니다만,


'필론과 돼지'라고 했을 때는 저 서로 다른 인물을 중심에 둔 '이야기'가 되는 셈이지요.


사실 전 필론의 돼지도 참으로 우아하고 멋진 제목이라고 생각하지만, 제목을 바꾼 지금에야 비로소 독립적인 이야기가 된 것 같아 참 마음에 듭니다.




제목 하니까 괜히 떠오르는 것인데, 드라마 <모래시계(1995)> 제목에 관한 비하인드입니다.


출세를 추구하다 몰락한 것에 방점을 둔 '이카루스의 날개'라는 제목을 주장한 홍 의원과


권력의 유한성에 초점을 둔 '모래시계'를 주장한 작가.


저기서 설명하기로는 정치적인 이슈 때문에 바꾸었다고 하지만,


그런 거 없었어도 모래시계가 더 나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좀 더 핵심적인 화두를 건드리니까.


어쨌든 이 얘기는 작가와 당사자의 시각 차이가 뚜렷이 드러나서 참 좋아하는 비하인드 스토리입니다.


아무튼 제목이라는 것이 참 단순한 것 같으면서도 오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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